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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한의 세상만사]시인의 길

 

시인이란 고귀한 신분이다 가난은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이름 석 자는 보배로 안다 문인이 정치권에 뛰어 들면 결코 순탄하지 않은 것을 많이 보았기에 안타깝다

‘이런 사람 직접거리면 안 되는데….’ 이런 제목의 글을 10년 전에 쓴 적이 있다. 작고한 분이지만 우리나라를 철강왕국으로 발전시킨, 영웅반열에 들 만한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을 정계(政界)에서 집요하게 유혹할 때 안타까워서 쓴 글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때 묻지 않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분들이 절실히 필요하겠지만 오만 요설(妖說)로 유혹해 놓고는 결국 용도폐기(用途廢棄)해 버렸다. 사리분별(事理分別)이 참으로 대단한 분인데….

‘마지막 여생을,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를 정녕 외면하시겠습니까?’ 이런 거절할 수 없는 명분으로 마음을 흔들어 놓고, 끝내는 평생을 욕되게 하고야 마는 염치없는 사람들 굿판에 무엇을 얻으려고, 결국 역사는 노욕(老慾)으로 간주한다.

요즘 대선(大選)이란 도매 시장판에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지하(金芝河), 신경림(申庚林). 우리가 존경하는 시인들이다.

시인(詩人)이란 자연과 인생, 그리고 여러 현상에 대한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고귀한 신분(?)이다.

어휘(語彙) 하나 선택에도 밤을 새우고, 사회현상 하나에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이다. 속인(俗人)과는 뼛속부터 다르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이름 석 자는 보배(寶盃)로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인들을 이 지저분한 세상에 난향(蘭香)을 피우는 귀한 사람으로 모시고 있다.

얼마 전 김 시인이 지상에 오르내렸을 때 안타까움이 일었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중략…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중략…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시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정말 기가 막히는 외침이다.

김 시인은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하여 특정후보의 제의를 거절했다고 밝히면서도 ‘아버지를 잊고, 어머니를 택한 여성 후보’가 대견스러운 듯 말했다. 분명한 표현을 에둘러 말하는 것을 보고 모름지기 시인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그나마 품위를 엿보았다. 아이구! 다행이구나!

신경림 시인의 ‘농무(農舞)’.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이제는 중견시인이 대학에 입학해서, 평생을 ‘시인의 길’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을 때, 지도교수가 농무를 천 번을 읽으라고 했다는데. 쉬운 말로 구성되어 있지만 농사 한 철이 끝난 후 술 한 잔 마시고 고달픈 인생사를 잠시 잊으려고 날라리 불고 꽹과리 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래서 시인은 위대하다.

그런데, 모 후보의 멘토단이란 묘한 모임(?)에 이름을 걸고 약간은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정이야 알 수 없지만 신 시인께서 “나도 뜻을 같이 하니 도울 것이 있으면” 이렇게 먼저 제의했더라도 “아닙니다. 선생은 시대의 시인으로 남으셔야… 이 판은 선생이 끼어들 만큼 맑은 곳이 아닙니다.”

너무 순진한 상상인가? 하기야 두 분 모두 팔십 연세를 욕심내는 어른이니 주위에서 뭐라 한들….

혹시나 평생, 할 말 제대로 못하고 시로 인해 고초를 당했던 울분이 지배적(支配的) 의지(意志)로 변한 것으로 오해 받을까 안타깝다. 문학이, 그리고 문인이 정치지향적이 됐을 때 결코 순탄하지 않은 것을 많이 보았기에, 그리고 엄연히 정치는 현실이고, 문학은 이상인데, 서로 노는 물이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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