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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한의세상만사]분수 모르는 등극

분수를 지킬줄 아는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중급 위스키를 대접했다 최고급 위스키의 최대 소비국 등극 아직은 때가 아닌데…

 

우리 대한민국이 최고급 위스키의 최대 소비국으로 등극(登極)했단다. 훌륭하다! 대단하다! 부끄럽다!

10년도 넘지 않았나 싶다. ‘방송밥’ 먹을 때인데, 일본 모(謀) 방송국과 어린이합창단 교환 공연과 초등학교 축구 교환경기로 그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이 새로운 것이 있다.

개최 시기를 여름방학 기간인 8월로 잡았는데, 문제는 하프타임-일본 측에서는 8월은 날씨가 더워 아이들이 지칠 수 있으니 전반전 끝내고, 20분을 쉰 후에 후반전을 하자고 했다.

어느 나라가 이기던 국위선양(國威宣揚)할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친선(親善)이기 때문에 수월하게 합의해 줄 수도 있었으나, 문제는 중국 측과 1차 합의를 했기 때문에 고집 센 중국을 설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았다.

어찌됐던, 팩스를 주고받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유난을 떨어 최종 합의를 본 후 기대(?)되는 저녁자리로 향했다. 생선회 그리고 오랜만에 일본의 국주(國酒)인 정종(正宗) ‘월계관(月桂冠)’도 맛보겠구나….

사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정종’은 여러 청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고유명사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 따끈한 정종 한 대포 주시오” 이렇게 말하면 “어느 정도 덥여 드릴까요?” 이런 말 오가는데 청주(靑酒)는 차게 마셔야 제 맛이라고는 하지만 청주는 비싸기 때문에 취할 만큼 마시자면 호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까닭에 일찍 취하자고 팔팔 끓여 마시는 것이 어느덧 전통이 되었다나.

너무 이야기를 에둘렀다. 저녁자리에 예상했던 대로 생선회는 올랐는데 너무 양이 적었다. “아휴! 저걸 누구 입에 붙이라고…. 자기들 한국 왔을 때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대접했는데….” 그러나 그들의 소식(小食) 습관은 익히 알고 있는지라 마음속으로도 탓하지 않았다. 먹는 것 가지고 타박하면 소인배-유가(儒家)의 당당함도 있었거니와 포장한 술병을 풀기 전에 인사말을 했다.

“오늘 귀한 분들을 모시고… 영광스럽고….” 이때까지는 교과서에 나오는 환영사였다. “아시아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대국적인 양보를 해주신 김 선생을 비롯해서….” 이 대목에서는 쑥스러웠다. 하프타임 늘인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술병을 꺼내는데 ‘올드 파(old parr)’였다. “귀한 손님들을 위해 위스키의 명주인 올드 빠르(파를 된 발음으로)를 준비했습니다.”

올드 파는 우리에게 익숙한 밸런타인, 조니워커 블루, 로열살루트에 비해 대접을 못 받는다. 면세점에서도 귀퉁이에 놓여있고, 손님들 손길이 없어 껍데기엔 먼지가 쌓여 있다(우리나라 공항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음).

명주라로 부르기에는… 보물 다루듯이 소중하게 포장을 벗기더니 양주잔에 7활이나 될까 공손하게 따르고는 건배! 그리고 홀짝 홀짝….

하기야 위스키 잘 마시는 법(결코 마시는 법이 아님)이 입에 부드럽게 품어 맛을 보고 다음에 혀끝에 와 닿는 섬세한 맛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코끝에 와 닿는 방향(芳香)을 즐기고, 그 다음에 꼴깍 한다지만… 원 샷에 익숙해 있는지라 무척 감칠맛 났다. 하여간 올드 파에 대해서 알분을 좀 떨었는데.

“술 이름 ‘올드 파’란 유래는 토마스 파란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영감 나이 106살 때 소녀에게 몹쓸 짓을 해서 아기를 낳고 감옥에 갔다 온 사람입니다. 병 껍데기가 쭈글쭈글한 것은 노인의 피부를 의미하고, 아마 152세까지 살았다지요.”

하이! 하이! 하고 그네들도 맞장구 쳤지만 과거의 술자리를 회상하면 항상 부끄러울 뿐이다.

그땐 잘나가던 그네들인데 왜 중급 위스키를 대접했을까? 분수(分數)를 소중히 한 것은 아닐까? 최고급 위스키-최대 소비국, 아직은 이럴 때가 아닌데?

누구 말마따나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은 아닌지?’ 분수를 모르는 것은 천박한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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