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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한의세상만사]솔직함에 대한 반란(反亂)

 

사면 조건 천주교서 교육받아 어디든지 삐딱한 사람 용감 솔직함 시기따라 적절해야

이젠 시효(時效)가 완전히 소멸(消滅)될 만큼 오래전,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러(함부로 상상하지 마시길…) 한때 아내에게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던 비참한 시절이 있었다.

사면(赦免)을 조건으로 천주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20쌍 정도로 기억된다.

다들 모이자, 신부님 말씀이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제외하고 왜 이곳에 왔는지 그 이유만 말하라고 했다.

“이혼 하려했는데 주위에서 하도 권하기에, 마지막으로 이곳에….” 대부분 이런 사연이었다.

남편은 시선을 동쪽으로, 부인은 서쪽으로, 교육을 마치면 당장 정문에서 갈라질 험악한 분위기였다. 왜 직업과 어디에 사는지 극구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한참 후 뚜렷한 해답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번과는 달리 대가성(?)이 전혀 없는 여행을 떠났는데, 때는 겨울인지라 옷차림새부터 각양각색이었는데 단순히 추위만 이기려고 매무새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두 겹 세 겹 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날씨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얇은 옷으로 맵시를 낸 부부, 차림새부터 많이 가진 사람, 덜 가진 사람 뚜렷한 차이가 났다.

모두 모이자 천주교 교육과는 달리 ‘직업’과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 자기소개를 가이드가 주문했다.

“개포동에 살고, 직업은 한의사입니다.”

한의사-좋은 직업이다. 약간 술렁거렸다.

쭉 이어지다 얇은 옷 입은 부부가 일어서더니 공손하게 “저희는 강남구 서초동에 살고, 직업은 의사, 집사람도 의사입니다.”

강남에 의사라…. 묘하게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어느 아파트, 몇 평에 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시오.”

얼른 듣기에 삐딱한 질문이 날아왔다.

질문 받은 강남 의사 부부는 낭패한 표정이 되었다. 어디든지 삐딱한 사람은 용감한 법이다.

질문이 끝나자 와- 하는 함성이 일었는데, 두 말 할 것 없이 잘난 사람의 솔직함(?)에 대한 비꼬는 환호였다.

그리고 기자(記者)적인 질문을 던진 친구는 자기는 천국에서 왔으며 직업은 국가적 기밀, 전화번호는 천 국(1000)에 천 번(1000)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강남부부는 여행기간 내내 변방(邊方) 취급을 당했지만 모질게 질문한 친구는 인기 단연 최고였다.

식사 때마다 깻잎이며 멸치조림-항상 그가 있는 곳에서는 상납 받은 반찬으로 풍성했다.

여행 끝날 때까지 두 부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 얻은 교훈-남에게 부러움을 일으키는 솔직한 자기소개는, 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신부님의 깊은(?) 뜻이 이해가 되었다.

요즈음 신풍속(新風俗) 두 가지-.

주위에 대학수능시험을 치른 당사자에게 “점수는 몇 점 나왔는데?” 이런 질문은 비상(砒霜)이란다.

모른 체 하기도 뭣할 때는 “아이고! 고생 많았다.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결과 있겠지.” 이처럼 두루뭉술한 언사가 최선이란다.

수능을 잘 치렀더라도 산수공학적(算數工學的)인 현재 입시체제에서는 돌아가는 뺑뺑이판에 화살을 잘 맞혀야 하는 본고사라는 관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삼가야할 질문으로, 청첩장을 받고 혼주에게 축하인사와 함께 단순한 호기심으로 “사돈 될 사람 무엇 하는데” 이런 질문은 절대 피해야 한다는데, 뾰족이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상처 난 곳을 헤집는 것과 마찬가지라나.

병색이 뚜렷한 사람 보고, 문자를 써서 용태(容態)가 어떠시냐고 재차 삼차 질문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데, 신풍속이 틀린 말 하나 없지만 어딘가 삭막한 냄새가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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