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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이경선"스마트한 벗"

 

얼마 전까지 다른 것 다해도 내 생전 해보지 못할 것 중 하나가 스마트폰이었다. 사용하던 휴대폰이 통화도중 자주 끊기는 사고가 빈번하여 교체하려는데 그동안 여러 번 등 돌리던 스마트폰을 결국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인들이 하나둘 사용하는 걸 보았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고 일단 내가 사용할 폰이 만만해야 하건만 흡사 시댁어르신 같았다.

운전을 배울 때도 그랬다. 난 결코 못하리라 고개를 저었지만 집과 거리가 먼 초등학생 딸아이의 통학을 자처한 터라 뻑뻑한 핸들을 움켜잡을 수밖에 없었다. 내 손길에 자동차가 움직이자 신기하기도 하고 겁도 났지만 하루빨리 면허증을 받는 것이 우선이었다. 애도 낳았는데 무언들 못하겠냐고 마음을 돌려먹으니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그때는 젊은 시절이 아니던가. 내 손바닥보다 작은 폰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에 휴대폰 상점 직원은 크게 웃다가 금세 익숙해진다고 미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내키진 않았지만 서류를 작성하게 되었다.

곧 택배로 받은 폰 세트는 불편한 손님처럼 느껴졌고 뜯어보기도 갑갑했다. 단순한 두뇌로는 배터리를 장착하는 것과 USB라는 걸 어디다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설명서조차 과학교과서 이상으로 보였다. 아이들이 곁에 없으니 쉰 세대로선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기계를 다룰 줄 아는 남편을 믿었건만 풀어놓은 스마트폰 구성품을 마치 지구 반대편에서 날라 온 외계인이라도 보듯 이리저리 뒤집어보다 다시 원래대로 포장했다. 정 버거우면 반품할 요량으로 털끝 하나 건드리기도 조심스러웠다. 휴대폰 상점에선 왜 연결을 안 하느냐며 연락 왔지만 사용하던 폰이 자주 끊기는 병든 몸이라도 개통을 미루고 있었다.

마침 딸을 만날 일이 있어 폰 세트를 쇼핑백에 담아 출발했다. 만나자마자 골칫덩어리 쇼핑백을 던져주자 딸은 순식간에 뭘 빼고 넣고 하더니 번호이동을 하고 사용하라고 했다. 아직 숨을 쉬고 있는 폰에겐 미안했지만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듯 정지시키고 넓적한 화면이 손에 쥐어졌다. 전화가 와도 한참을 건드려 받아야했는데 몇 번 사용하다보니 익숙해지려했다. 처음엔 전화걸기와 메시지 전송 두 개만 사용했다. ‘카카오 톡’ 기능은 후에 알게 되었고 수많은 아이콘을 들여다보며 배우기 시작했다. 문화센터에 스마트폰 사용을 가르치는 과목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의아했지만 무척 공감이 갔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젠 예전처럼 손쉽게 문자를 보내고 카톡도 사용한다. 예전 폰을 다시 쓰라면 백배사죄 하며 돌려보낼 것 같고 최첨단 기능에 엄지손가락을 세워 줄 정도다.

언뜻 스치는 글감을 메모장에 입력하고 떨어져 있는 아이들과 카톡대화를 한다든가 남편이 해외출장을 가도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흡족하다. 깜빡 잊고 놓고 간 중요 서류를 찍어 보내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을 카톡 대문에 내걸기도 한다. 심심할 틈이 없다. 짬이 나면 폰을 열어 인터넷 서핑하고 남의 집 구경도 한다. 안부도 전하고 잊힐 뻔했던 지인들의 소식도 받는다. 녹음기능도 활용한다. 출판행사 사회를 맡은 부담이 컸는데 여러 번 연습했고 그 덕에 큰 실수는 하지 않았다. 산책 중에 음악도 듣는다. 혼자는 다니지 못하던 야밤호수를 라디오 기능을 켜놓은 채 함께 걷는다.

몇 달 만에 영특한 친구를 얻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처럼 모인 가족이 외식을 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을 주문하곤 모두 스마트폰을 열어보고 있었다. 물론 나도 습관적으로 화면을 켠 채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고 평소 그런 것엔 무심한 남편조차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린 얼굴보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젠 어떤 중간매체를 통해 음성적인 대화에 더 익숙해진 것 같았다.

식당 안을 둘러보았더니 우리 가족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거실에 있는 남편에게 안방에서 카톡으로 묻는 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카톡 기능을 발명한 사람이 대중적인 소통에 관해 우수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그 반대의 현상도 우리 몫인 듯싶었다. 자고나면 새가 알을 부화하듯 연락이 끊기고 번호만 저장되어 있던 벗들이 창문을 두들긴다. 계절과 달리 대화창엔 산수유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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