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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향]서종남"가족간의 소통으로 따스한 겨울 되기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인간이 소통(Communication)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소통은 인간관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가족구성원 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가정은 병들거나 해체 위기에 당면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한 가족 두 문화의 가정이 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외에도 언어와 인습 등 문화적 차이로 인한 소통 부재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외국인주민 중 불안장애, 우울증, 강박증 등 다양한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문화인들의 언어·문화·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다각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때 바로 해소되지 않은 갈등은 마음의 병이 되어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한국에 정주하고 있는 외국인주민의 심리적 안정과 긍정적 정착을 위해 이제는 그들을 위한 다문화심리상담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문화적 배경의 고려와 다문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담을 통해 다문화가정의 행복을 추구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건강한 사회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 시집온 갓 스무 살 된 Y는 한국의 시댁에서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방앗간을 경영하는 시아버지 그리고 치매 환자인 시어머니와 함께 방앗간 위층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밖에 볼일이 있을 때면 며느리에게 방앗간에서 들기름이며 참기름이며 값을 반복해 가르쳐 주곤 팔게 했다.

어느 날 위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Y가 올라가 보았더니 시어머니가 오물을 온통 거실에 발라 놓은 것이 아닌가. 그녀는 그것을 치우느라 기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외출했다 돌아온 시아버지가 돈을 확인하고는 몹시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네가 돈을 빼돌렸니?” 하고 전에 했던 말을 똑같이 물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그것이 꾸중이라고 느낀 그녀는 “네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잘하겠습니다” 하고 무조건 용서를 빌었다. 결혼중개인이 한국의 시부모님이 야단을 치면 말대꾸하지 말고, 그렇게 하면 덜 혼이 난다고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고, 구체적 사정을 모르는 아들은 처음엔 화만 내다가 시간이 흐르자 급기야는 폭행을 하기 시작했다.

오해는 오해를 낳아 남편의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루는 도저히 매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다 어느 역을 발견하고 거기서 밤을 새웠다. 임신 중이던 그녀는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날이 밝자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학대는 더욱 심해졌으나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는 태어났다.

물론 남편은 병원에 오지도 않았다. Y는 아이를 생각해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으나 결국 계속되는 폭력과 이혼 요구로 끝내 핏덩이만 빼앗긴 채 인천의 육포공장에서 가냘픈 몸을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Y의 사례는 언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일차적 소통은 언어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의 단절은 곧 외국인이주민에게는 절해고도에 홀로 있는 것 같은 환경에 놓이게 한다.

무조건적 순응이 미덕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는데, 어른 말에 토를 달거나 변명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국식 예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결혼 전 누군가 사안을 분별해 대처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면 이러한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카뮈는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짓보다 늦게 전달되는 진실의 속성을 말해주는 명언이다.

‘진실이란 빛’이 어느 땐 받아들이는 쪽의 눈을 밝게 해주기도 하지만, 또 어느 땐 ‘진실이란 빛’이 눈을 부시게 해 앞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Y는 이 엄동에도 아이가 보고 싶어 시댁의 주위를 맴돈다. 어느 날은 대문 앞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다고 했다.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워낙 엄격한 자신의 나라에서는 아직도 이혼녀로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아이를 두고 결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 겨울은 더욱 길고 추울 것이다.

하루속히 가족 간의 소통으로 따스한 겨울이 되기를 한 해의 끝자락에서 기원하며 그녀의 한국어 실력이 늘어나 오해를 벗고 온가족이 행복을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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