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한의 세상만사]오늘의 운세(運勢)
[김기한의 세상만사]오늘의 운세(運勢)
  • 경기신문
  • 승인 2012.12.2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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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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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예측을 조언받는 건 나침반 역할일 뿐 자세한 약도까지 제공받진 않는다
▲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객원 논설위원·前 방송인

사람의 신체 가운데 가장 두꺼운 곳은? 발바닥이다. 왜 그럴까? 인생은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란다. 일본 속담이다.

운전할 때마다 놀랍고 신기한 것이 내비게이션 기능이다. “낙석 위험지역입니다.” “안개 위험지역입니다.” 예쁜 목소리로 척척 지시를 한다. 그래선지 요즘 사람들은 세 여자 말만 잘 들어도 팔자가 수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첫째 마누라 말을 잘 듣고, 둘째 내비게이션에서 말하는 여자 말 잘 듣고, 셋째 골프장 캐디(도우미) 말 잘 들으면 평년작(平年作)은 유지할 수 있단다.

한데, 울퉁불퉁한 인생길에 발바닥만 두텁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돌부리도 찰 수 있고, 냇가를 건너야 하고, 예측불허(豫測不許)의 돌연사태가 숱하게 도사리고 있다.

만약 인생에 내비게이션을 장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당신의 컨디션은 좋지 않은 상태이오니 친구와 내기바둑을 삼가시고.” “주식에 투자하는 등 돈거래를 피하시고.” 이런 지시를 받고 움직인다면 따분하지만 무척 편리할 것이다.

신문 1면에 미사일이 어떻고, 무인 우주선이 어떻고 하는 세상인데 유수(有數)의 신문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오늘의 운세’란 것이 있다. 그 지면에 광고를 대신 올리면 하루에 대강 300만원에서 500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한 달이면 1억 가까운 돈이다. 그런 손실을 감수할 만큼 오늘의 운세가 인기가 있다고 했다.

한때, 소주잔 앞에 놓고 잡담이나 나누는 역술가 한 사람이 있었다. 역술가라고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태도와 외모다. 아직까지 청바지 입고 머리에 노란 물들인 역술가는 보지 못했다. 걸음은 느릿하게, 말도 천천히… 하여간 전형적이었다.

속을 잘 안 보였는데, 어느 정도 스스럼없었을 때 솔직한 질문을 했다. ‘남에게는 땅을 사라 팔아라 그렇게 앞일을 뚜렷이 예측을 하면서 선생은 왜 가난하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사람의 운명을 알고 맞춘다는 것이 천기를 읽는 것인데 이것을 말하면 누설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천기누설(天紀漏泄)이란 신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 될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알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용한 역술가란 눈치 100단이어야 합니다. 처녀가 점집을 찾아올 땐 대부분 결혼문제, 애인문제 그리고 결혼한 여자가 찾아올 땐 자식문제, 남편 승진문제, 건강문제, 돈문제… 하여간 대강 답이 나옵니다. 그런 문제를 경험으로 인생 상담을 충실하게 해주는 것도 의무입니다.”

깊이 찔러 보았다. 맞는다는 확률은 어느 정도인지? 답하기를, 중국에 전설적인 어느 산명선생(算命先生)이 세상을 떠나면서 제자들에게 “이제까지 내가 맞춘 확률은 50%였는데 너희들은 분발하여 나의 수준을 넘어라”고 유언을 했다. 소문이 나자 시중사람은 “순 엉터리! 반밖에 맞히질 못하다니, 이제까지 순전히 허명에 속았다”고 투덜거렸지만, 제자들은 “역시! 우리 선생님 대단하다”라고 추앙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확률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하라고 아주!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얼마 전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 ‘오늘의 운세’란에 눈길이 갔다. 내 나이에 해당하는 운세가 ‘남과 싫은 소리를 피할 것,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할 것’, 그 이튿날은 ‘지나치게 한 가지 일에 집착하지 말 것, 과음하지 말 것’ 버릴 말이 하나 없었다.

보편적 충고가 해로울 일이 없다. 그 다음날부터는 ‘오늘의 운세’ 읽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거기다 더욱 확실한 것은 건너는 사람이 몇 사람 있을 때 뒤따라가는 것도 자갈밭 인생길에 해될 일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인생에 예측을 조언 받는다는 것은 나침반 역할을 할 뿐 자세한 약도까지 제공 받는 것은 아닌가 보다. 쓸데없는 넋두리를 한 해 동안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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