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일 칼럼]시간에 대하여
[채수일 칼럼]시간에 대하여
  • 경기신문
  • 승인 2013.01.02 20:18
  • 댓글 0
  • 전자신문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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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대 총장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역사 속으로 보내고, 지금 우리는 새해를 맞았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의 전환기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안고 결심을 새롭게 합니다. 과거는 오직 기억 속에 있을 뿐이지만 여전히 현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과거는 잊히는 것이 아니라 용납될 수 있고 용납된 과거만이 화해될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는 옛날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변하는 것은 사람 자신인데, 사람들은 시간이 가고 또 온다고도 말합니다. 해가 변한다고 해서 시간 자체가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깨어있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은 습관의 기계적 반복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은 오늘의 연속일 뿐입니다. 깨어있지 않은 사람에게 변화란 기껏 우연이거나 운명, 또는 재수일 뿐입니다. 일이 잘되면 우연히 재수가 좋은 것이고, 일이 잘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운명이거니 생각합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가능성이며 준비입니다. 시간, 즉 때와 때 사이에서, 바로 그 때가 올 것을 예상한 치밀한 계획과 책임적인 결단을 포함한 것이 깨어 있는 사람의 시간입니다.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은 때를 묻지 않습니다. 그는 시간, 곧 때와 때 사이의 기계적 반복에 자신을 수동적으로 맡길 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었습니다. 기계적 시간의 연장은 ‘크로노스’로, 어떤 결정적인 의미로 충만한 순간은 ‘카이로스’로 이해한 것이지요. ‘영원’이 시간의 무한한 연장이 아니라 의미로 충만한 ‘순간’으로 이해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삶의 미래는 열려 있고, 우리에게 그 때가 언제일지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건들이 닥쳐올지,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열린 가능성으로서의 미래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그러나 미래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미래는 우리의 스펙과 계획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우리가 ‘가야할 곳’이 아니라, 우리에게 ‘오고 있는 곳’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미래가 오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가 우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스펙과 계획, 전망과 예측을 초월해 있다는 것이 희망의 근거입니다. 종교들은 그래서 미래가 신의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가 신의 것이라는 믿음은 사람을 얽어매고 있는 과거와 현재로부터 해방시킵니다.

불확실한 미래, 불투명한 시간의 전환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깨어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깨어있다는 것은 잠들어 있다는 것의 반대 개념이 아닙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관계없는 미래에만 집착하는 것은 깨어있는 사람이 아니라 꿈꾸는 사람입니다.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이런 의미에서 밤에 꾸는 꿈을 낮에 꾸는 꿈과 구별했습니다. 밤에 꾸는 꿈이 억압된 의식의 재현이라면 낮에 꾸는 꿈은 깨어있는 사람의 꿈입니다.

현재 안에서, 현재로부터 미래를 지향하며 깨어 있어야 우리는 과거를 반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과거의 반성은 책임전가와 책망, 자신에 대한 절망 혹은 자기정당화로 끝나는 수가 많습니다. 희망을 갖지 않은 사람은 과거를 돌이켜 역사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계획하고, 내일을 준비합니다. 미래에 희망을 건 사람은 무책임하게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길 수 없습니다.

대선 후유증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선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고, 상처는 오래 가는 법입니다. 남은 일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데, 그것은 공약을 지키는 일입니다. 공인으로서의 승자는 자신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야 하고, 패자는 희망 있는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을 절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 현실에 대한 절망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됩니다. 희망 있는 정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는 정치인치인만의 과제가 아니라 참여하는 국민 자신의 과제입니다. 배를 뜨게 하는 것도, 배를 난파시키는 것도 결국 물이고, 물은 곧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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