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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일 컬럼]나폴레옹의 서명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재임시절에 나폴레옹이 210년 전 스위스의 한 산촌사람들에게 진 빚 1천500만원 상당을 갚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 강인한 계약정신과 신용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1800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가 알프스의 베르나르 준령을 넘을 때 스위스의 깊은 산골 부르상피에르 촌에서 머문 적이 있다. 그때 이 부대가 빌려간 냄비와 주전자 188개(그 중 84개는 반환), 한 그루당 6프랑씩 주기로 하고 벌채한 소나무 2천37그루, 하루 3프랑으로 징용당한 마을사람들의 품삯 그리고 하루 6프랑으로 빌린 노새 값을 갚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결제하여 보상하겠다’는 단서조항에 나폴레옹이 서명한 문서를 이 산촌에서는 보관하고 있었으며, 이 문서는 지금도 유효하다는 국제 변호사의 도장도 찍혀 있다고 한다.

이자까지 치면 5천억 원쯤 되나 이자는 받지 않겠다고 양보하고 원금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프랑스 대통령에게 요청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청구하는 측도 집요하고, 보상하는 측도 통쾌하다. 그리고 침략만 받아온 우리에게 보상 받아낼 일이 산더미 같건만 ‘국운이 그러했는데’ 하고 체념하거나 한(恨)이나 원(怨)으로 승화시키거나 되뇌이고 싶지 않은 과거로 치부해 버리는 우리에게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서독에서는 종전 70년이 가깝도록 나치의 죄악을 꾸준히 추적, 처벌하는 기구가 아직껏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냄비 하나 빌려간 부채가 몇 백 년 유효하듯이 죄악도 몇 백 년 유효한 것이다.

2013년은 많은 일들이 새롭게 시작되는 해이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이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이며, 이를 바라보는 모든 국민은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정권은 국내 경제를 살리고 복지를 강화하여 많은 대한민국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것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들 모두 2013년 새로운 정권을 출범하였는데 이들 나라의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중국이나 일본 모두 스위스 대통령의 일화와 비교해 본다면 우리가 계속해서 이러한 부채를 갚으라고 독촉하고 끈질기게 받아 내야할 상대국이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 동안 사과와 보상을 외쳐 왔건만 그것을 통쾌하게 인정하고 갚아주고자 하는 국가도 없으며, 오히려 이를 인정하고 역사적인 사실로 확인시킨 자국민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들을 참고해 볼 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2013년 우리나라의 외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부드럽게 접근하되 끈기로 우리가 받아야 할 부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와 가장 가까이 이웃하고 있는 일본은 아베 정권의 출범으로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 국가에 많은 우려를 표명하게 하는 실정이다.

아베 정권은 우리가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다케시마(독도)의 날’을 국가행사로 격상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 정도로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극우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자국을 위해서도, 주변국과의 평화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은 극우로서의 공약이나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전 정권에서 인정한 사과와 부채의 내용을 인정하고 이를 통쾌하게 갚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아시아 강국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거두지 않을까 한다.

현대 사회는 신용의 사회이고, 미래의 사회는 신용에 신뢰를 더한 사회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간의 신용과 신뢰는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나폴레옹이 200여 년 전 약속했던 문서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신뢰가 프랑스의 발전된 문화를 이루고, 다양한 경제적 기반을 이룩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2013년 계사년을 맞이하여 개인이나 우리사회는 물론이요, 국제사회도 이러한 신용과 신뢰를 지키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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