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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커밍 순~ 시민영화

 

영화 ‘타워’를 보았다. 영화감독 초년시절 한 영화제에서 ‘타워’의 감독을 알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타워’ 화면에 ‘온실’이라는 따뜻하고도 파격적인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그의 진지한 이미지가 오버랩 되었다. ‘타워’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있지만, 영화의 후반부쯤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에 나도 눈가를 닦아가며 영화를 보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먹는 CG의 완성도에 뿌듯했고 그것의 과다사용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주인공과 조연, 단역들까지 캐릭터가 살아있어, 익숙한 소재와 스토리텔링임에도 눈물이 났다. 이는 영화의 스케일 때문이 아니고, 영화에 드러나는 김지훈 감독의 사람에 대한 시선과 인물에 몰입한 배우들의 연기로 인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설 때는 왠지 허전했다.

우리나라 상업영화가 추구하고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식은 ‘주인공이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과 맞서 싸워 끝내는 승리한다’는 스토리에 ‘지적 수준이 중학교 2학년 정도가 이해할 수 있게 쉬워야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규격화된 틀에 첨단 테크놀로지를 입혀 감각을 압도하는 영상과 사운드로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100억이 넘는 자금을 들여 만들어 다양한 문화와 계층의 관객들을 사로잡아 대박을 터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자극적인 영상과 파워풀한 사운드에 잠시 일상을 잊고 빠져들지만, 영화가 끝나고 거리의 소음 속으로 돌아올 때에는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워’는 미디어대기업 CJ가 기획·투자·배급·상영한 영화로, 산업제품의 논리에 맞춰 출고된 영화이다.

상업영화의 반대편에 독립영화가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검열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는 독립영화는 ‘파업전야’부터 최근의 ‘두 개의 문’까지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다. 이런 영화들은 사회를 더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영화들이다. 민주주의는 불의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할 때에만 유지되는 것이므로 이런 영화들은 계속 나와야 한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주로 교육하고 계몽하는 영화들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면이 있다. 독립영화 역시 제작주체와 감상자는 수직적 관계에 있다.

CF UCC 뮤직비디오 드라마 영화 등 영상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이제는 영상문화의 주체가 되어야 할 때이다. 요즈음은 일반인들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해 쉽게 영상물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영상 제작과정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만 있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작년 초부터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시민영화제작’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2기까지 40여 명이 참여하여 13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들로 ‘수원시민작은영화제’를 열어 시민들과 축제분위기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상영된 영화들의 내용은, ‘40년 동안 무서워만 했던 할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이해하고 소통하게 된 손자, 시설에서 자신보다 더 나이든 할머니들을 돌보며 자아를 찾아가는 할머니, 남편 출근시키고 첫사랑의 백일몽에 빠진 중년여성, 아버지 몰래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 박사학위 소지자 이야기’ 등 대부분이 생활밀착형 스토리들이다. 이와 같이 시민들 자신의 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이야기들은 대자본의 논리로 규격화된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냄새가 스며있고,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을 수평적으로 연결해주어 연대감을 갖게 한다.

이런 건강한 개별성을 품고 있는 ‘시민영화’는 관객들이 시민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이웃과 교감하게 할 것이다. 시민의 삶과 마을을 배경으로 나왔기 때문에 ‘지역의 스토리’로 발전시킬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 마을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게 되면 공동체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다.

현재 전국 31개 지역에서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 중이고, 경기도는 고양 부천 성남에 이어 수원시가 개관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시민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찾아가는 시민영화제작교실’이 구(區)나 동단위로 개설되고, 거기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직접 만든 창의성 넘치는 영화들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난 후 느꼈던 허전함을 메워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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