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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깜짝 인사’? 좋다, 그러나…

 

나도 30초 전에야 알았다. 인수위 대변인의 말이다. 총리지명자 발표장에 있던 기자 누구도 예상을 못했단다. 혹시 인수위원장이 총리되는 거 아냐? 누군가 농담으로 던진 말이 불과 30분 후 ‘예언’이 되었다고도 한다.

인사는 보안이 생명이다. 중요 자리일수록 그렇다. 미리 새나가 좋을 일 없다. 여론검증? 막중한 총리 후보를 꼭 사전에 검증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공식적 검증과정은 앞으로 거치면 된다. 불통? 국민의 말에 귀 막은 게 아니냐는 불만인데, 이 역시 ‘짐작’일 뿐이다. 당선자가 귀를 막았는지 안 막았는지는 그야말로 ‘검증불가’이기 때문이다.

‘깜짝 인사’? 철통 보안 덕에 어느 누구도 사전에 몰랐다는 뜻이라면 ‘깜짝 인사’가 맞다. 만일 그렇다면 대통령 당선인의 첫 총리 지명 과정은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깜짝 인사’에는 다른 용례도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이 되자 정적(政敵)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지명했다. 스탠턴은 링컨이 올챙이 변호사일 때 치욕적인 인격 모독을 가했던 인물이다. 후엔 정치가 링컨을 일컬어 ‘스프링필드의 고릴라’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스프링필드는 링컨의 고향이고, 링컨의 트레이드마크 수염을 비아냥댄 표현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스탠턴 기용을 발표하자 참모들은 당연히 격렬하게 반대했다. “국방장관에 그만한 적임자는 없습니다. 내가 잃을 건 정적 한 명이지요.”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럴 때도 ‘깜짝 인사’라 한다.

대한민국 초대 조각 때도 ‘깜짝 인사’가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상전향한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에, 사회주의자 전진한을 사회부 장관에 임명했다. 의표를 찌른 ‘깜짝 인사’다. 이 대통령이 계속 이런 자세를 견지했다면 대한민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김용준 지명자가 발표되기 전 무수한 하마평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당초 1월 20일쯤 발표되리라던 예고가 빗나가자 모두들 속내를 궁금해 했다. 와중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들을 접촉해 보니 대체로 난색을 표하더라는 것이다. 가장 웃긴 사례는 아내의 반대 때문에 요청이 와도 수락하지 못한다는 어느 인사의 말이다.

총리 관두면 몇 년간 취업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차라리 그 누구처럼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털리고 싶지 않노라 고백이나 하지. 오호 통재라! 세계 10위권 나라 총리 후보들이 고작 이 정도인가. 당선인 주변에 이런 후보감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명이 늦어졌다고는 결코 믿고 싶지 않다.

김용준 지명자가 ‘책임총리’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선대위원장으로, 인수위원장으로 당선인의 입 역할만 했을 뿐, 자기주장이 없었고, 무색무취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누가 알랴. 군자 표변하여 소신 판결을 내리던 판관의 엄중함으로 막중한 국사를 지휘할지? 예단은 금물이다. 한 가지 걱정은 첫 인터뷰에서 드러났듯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듯하다는 점인데, 요즘 보청기술로 얼마든지 커버된다.

‘법과 질서를 확립하겠다’든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는 일성(一聲)도 믿음이 간다. 단지, 법과 질서 확립이 당선인이 5년 전에 썼다가 이번에는 버린 ‘줄푸세’ 중 ‘세’의 부활이라면 곤란하다. 당선인이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듯, 지명자의 ‘법과 질서’ 소신도 시대를 충분히 반영한 것이기를 기대한다.

사회적 약자 ‘배려’도, 개인적 의견으로는, 사회적 약자 ‘우선’으로 바꾸고 싶지만, 지명자의 의중이 그리 표현되었을 뿐이라고 믿는다. 사회적 약자는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정당한 몫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상식을 수십 년 법관인 지명자가 모를 리 없다. 사회적 약자를 ‘우선’ 하면, 모든 국민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보호되고 보장된다.

처음 얘기로 돌아가자. 강한 리더일수록 ‘깜짝 인사’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조직의 의표를 찔러 자신의 힘을 은연중 과시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링컨이 스탠턴을 기용하는 식의 ‘깜짝 인사’가 아니라면, 효과가 점차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적소에 적임자를 앉히기보다는 ‘놀래키는 재미’와 ‘핫바지 앉히기’ 유혹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진영을 넘어 널리 인재를 구하지 않으면 ‘국민대통합’이라는 꿈은 그야말로 꿈일 뿐이다. 장관 인선 과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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