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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칼럼]사랑, 그 혼란스러움에 대하여

 

사랑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아마도 인간이 역사상 제기한 질문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또 그에 대한 가장 많은 답이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사랑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기원전 8세기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가 쓴 ‘신의 계보’(Theogonia)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초에 ‘카오스’(혼돈)라는 신이 탄생하고, 그와 함께 대지의 신인 ‘가이아’, 사랑의 신 ‘에로스’(Eros)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오르페우스(Orpheus)는 에로스를 ‘가장 오래되고 그 자체로 완전하고 현명한 신’으로 표현했습니다. 사랑은 세상이 창조되던 신화시대에서부터 함께 있었던 것처럼 오래되었지요.

그러나 시대와 함께 사랑도 변해왔습니다. 대상과 관계의 형식에 따라 사랑도 다르게 이해되었습니다. 세기의 사랑으로 기억되는 유럽 중세 시대 엘로이즈와 아벨라드, 20세기 최고의 사상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하이덱거와 한나 아렌트에서부터 조선 3대 여류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부안 기생 매창과 유희경,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과 김우진, ‘나는 가수다’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가수 임재범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아! 실로 사랑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노래되어 왔습니다. 가수 임재범에게 사랑은 그가 살아온 유일한 이유, 존재의 이유입니다. 가난하고 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부른 그의 노래, ‘사랑’이 대한민국을 울렸습니다.

사랑이 존재의 이유가 아니라 파괴의 원인이 되는 현실도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오히려 자녀를 수동적이고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면서 그 이유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폭력을 휘두르고, 질투 때문에 파트너를 살해하는 것도 사랑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얼마 전 지독한 치매 할머니를 오랫동안 간병하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간병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치매는 인간다운 삶을 파괴한다는 생각, 더 이상 자식들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해하고 뒤따라 자신도 목숨을 끊는 것이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사람은 존엄하게 살 권리도 있지만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은 그 할아버지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누구나 다 알 것 같고, 대답도 거의 비슷할 것 같지만 정작 대답하기가 가장 어렵고 혼란스러운 것이 바로 사랑에 대한 질문입니다. 실로 사랑의 과잉 시대에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작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2000년 전 초기 기독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바울은 사랑을 신적인 은사이지 개인의 감정이나 의지의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 신적 은사라는 말은 사랑을 감상적인 것으로, 사소한 것으로, 개인적인 것으로 축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관심과 배려, 연민과 친절함, 민감함, 사려 깊음, 신실함 등도 사랑의 훌륭한 행위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신적 은사로 이해한 사도 바울에게 사랑의 근거는 인간적 능력이 아니라 신의 사랑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상대가 사랑받을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이 먼저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과잉시대에, 사랑이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으로, 그것도 대부분 남녀관계로 축소된 시대에 사랑을 신적 은사로 이해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사랑이 인간적 능력으로만 이해된다면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달했을 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일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파괴하는 행동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의를 묵인하고 악을 행하는 것을 더 이상 비판할 수 없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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