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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의 위로

 

국민들이 문화예술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파악하여 문화정책 수립의 기본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문화향수실태조사가 2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이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문화예술행사 관람률 1위는 영화라고 한다. 대도시와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의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이 읍면지역보다 더 높았고 가구소득과 비례하며, 나이와는 반비례하여 연령이 높아질수록 관람률은 낮아진다. 문화예술행사 관람의 장애요인으로 ‘관심 프로그램이 없다’ 31.7%, ‘시간 부족’ 21.6%, ‘경제적 부담’ 19.1% 등이다. 여가 활동 1순위는 TV시청이라고 한다. 문화예술은 우리 일상과 아직 참 거리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나마 시간은 없어도 경제적 부담 없이 볼만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영화를 보러 극장을 간다. 최근 주말 낮잠과 TV시청으로 여가 시간을 소일하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극장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레 미제라블’은 상영 8일 만에 관객 200만이 관람하는 등 흥행에 청신호를 밝히며 약진, 26일 누적관객 550만 명을 돌파했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적 제약을 극복하고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시작은 뮤지컬이었다. ‘레 미제라블’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과 더불어 소위 세계 4대 뮤지컬이라 불리는 작품 중 하나로, 국내 팬들이 오래 기다려왔으니 뮤지컬의 흥행은 예고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작년에 개관한 용인의 포은 아트홀에서 한국어로 초연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지방공연으로 이어지며 관객들의 호평 속에 객석 점유율 90%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열기는 서점가로 이어진다. 다섯 권이나 되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 완역본이 10여 개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어 베스트셀러 소설부문 상위권을 차지하는 중이다. 김연아 선수의 복귀무대에서도 ‘레 미제라블’은 화려한 우승 파트너였다. 대학로에서는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고, TV에서는 ‘레 미제라블’ 연극이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열풍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영화라 하겠다.

과연 이 열기는 무엇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한국에서의 영화 성공 요인을 다양하게 짚어보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는다는 원작의 지명도와 음악적 완성도, 그리고 스타급 배우들의 감동어린 연기가 잘 어우러졌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또, 150년 전 빅토르 위고의 시선을 통해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 묘사된 프랑스 사회와 인물들의 이야기가, 21세기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소설 속 그들과 너무나 닮아 있는 한국사회 속에서의 자신을 발견하고 위로와 치유를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익히 알려진 대로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간 감옥살이를 한다. 그야말로 생계형 범죄치고는 지나치게 가혹한 대가를 치른다.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비리 사범으로 수감되었던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들의 특별사면을 강행하는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정의 구현이라는 법의 엄중한 잣대가 유독 힘없는 불쌍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우리 현실. 헌법재판소장 출신의 총리 후보자는 각종 의혹으로 결국 자진 사퇴하였다.

여주인공 팡틴은 딸 코제트를 여관 주인에게 맡기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 미혼모다. 이 사실이 알려져서 공장에서 해고된 뒤, 머리카락과 생니를 뽑아 팔아가며 양육비와 병원비를 마련하다가 결국 몸을 파는 나락으로까지 떨어지고 만다. 오늘의 한국과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1천700만 임금노동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860만 명이 비정규직으로 계약직, 파견직, 하도급직, 일용직, 임시직,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의 꼬리표가 따라 붙는 노동자들이다. 빚은 빚을 낳고 가난은 대물림된다. 세 자매가 지하방에서 영양실조 상태로 발견되고, 폐지를 주우며 연명하는 독거노인의 교통사고 사망소식이 들리는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역사가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불쌍한 사람들’이 위로받고 살아갈 희망이 보이는 사회가 되기를 새 정부 출범에 앞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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