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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시(詩)의 경제학

 

시(詩)에는 당대(當代)를 관통하는 철학이 깔려있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한 시대의 모든 상(相)을 알고자 한다면 그 시대의 시를 먼저 읽으라’는 성현의 가르침은 유효하다. 폭압의 시대에 시인이 가장 먼저 탄압받는 영광(?)을 누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고전 소설 ‘춘향전’에서 어사 이몽룡은 이렇게 시대를 읊조린다.

‘金樽美酒千人血(금준미주천인혈)/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효만성고)/燭淚落時民淚落(촉루락시민루락)/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호사스런 술독의 맛있는 술은 만백성의 피요/옥쟁반의 기름진 고기들은 만백성의 살점이라/밝은 촛물 녹아내릴 때 백성들은 눈물을 쏟고/노랫소리 가득한 곳에는 백성들의 원망 소리 드높구나.)

18~19세기의 시대상이다. 슬프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은 수탈과 억압의 대상이다. 위정자들은 이처럼 시대를 초월해 삶의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21번 염색체는 일반 백성들보다 1개 많은 3개로 추정된다. 이 ‘빨대 염색체’는 대를 이어 유전되며 진화한다. 18~19세기와 현재의 시대상이 같은 이유다.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그러니 비슷한 시기인 1832년 프랑스에서 터진 6월 항쟁의 주역들도 영화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2012)에서처럼 ‘모두 사랑의 전사가 되세/강하고 용감하게 행군하세/바리케이드 저편 어딘가엔 그리던 낙원이 있을까…/’를 부르며 절규했지만 결국 바리케이드를 넘지 못했다. 그들도 너무나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최후의 방법으로 ‘총’을 선택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념은 유전자를 이기지 못한다. 시(詩)만 화석처럼 남아 당시를 증언할 뿐이다. 가난이 원수였다.

다시 한국이다. 대학이 우골탑(牛骨塔)으로 상징되던 때가 있었다. 아들 하나 대학생 만들어 집안을 일으켜 보려던 부모들의 염원이 간절했던 시절. 그 시대를 노래한 시 하나. ‘저 건너 마을의 장날이라 송아지 끌고 장터간다/서울 간 내 아들 생각하며 송아지 끌고 장터간다/하늘 저 끝에 흰구름 흘러간다/흘러서 어디로 가는 거냐 음~매 음~~매/커다란 두 눈을 껌벅이며 슬픈 듯 내 얼굴을 바라보네/뒷발에 힘주고 가기 싫다고 자꾸만 내 얼굴을 쳐다보네/소야 잘 가라 소야 잘 가거라/뒤돌아보지 말고 가라 음~매 음~~매(한돌 시 ‘소’ 全文).

자식을 위해 자식 같은 소를 장날 내다 팔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너무도 절절하다. 그래, 돈만 있었다면 뒷발에 힘주고 저승길을 거부하던 ‘또 다른 자식’을 가슴에 묻었겠는가. 그렇게 사각모를 쓴 아들 대부분은 늙은 부모를 외면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채널을 다시 현재로 돌려보자.

문화와 예술로 세상에 공헌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인 미주알클럽이 진행하는 ‘시심(詩心) 프로젝트’의 ‘번외 편’에는 안도현 씨의 시 ‘문제없어’가 나온다. 최근 만난 시 가운데 최고다.

‘인도 리시키시 요가 스승님이 가르쳐 주셨죠/집에 불이 나면, 말해/노 쁘라블럼./차에 몸이 치이면 말해/노 쁘라블럼./회사가 부도나면 말해/노 쁘라블럼./외롭고 힘들고 피곤하고 지쳐도 스승님은 말했죠/노 쁘라블럼./그런데 수업료를 안 내면/빅 빅 쁘라블럼/유 다이(You die). 돈 고(Don’t go).’

요기(yogi)이자 구루(guru)인 인도의 성자에게도 경제문제는 심각하다. 세상일은 물론 삶과 죽음조차 초월해 보이는 명상가에게도 수업료는 밥이며 숨이며 하늘이었던 것이다. ‘지불하지 않으면 죽음(No pay must be die)’이라고 웃으면서 협박할 정도니 말이다. ‘악마의 금전’이라고 아무리 비난해도 가난한 이들에게 돈은 신(神)이며 ‘정의’다. ‘인생에 있어서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에게는 이런 말이 숨어있다. ‘제게는 돈이 중요하지 않을 만큼 많이 있어요’라는.

하여, 가난구제는 나라님의 몫이다. 나라님을 현대로 조금 무리하게 옮기면 대통령이 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경기지역 중소기업인들의 평가가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잇따른 밀봉인사가 패착으로 드러나 5년 후가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희망에 방점을 찍어본다. 가난한 백성에게 희망마저 없다면 이 풍진세상, 견딜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나라를 살린다. 배(국가경제)보다 큰 배꼽(대기업)을 만든 선친의 오류를 답습하기 않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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