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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소고기 사묵는 일’보다 더 급한 것

 

34 대 13. 왼쪽에 있는 두 개의 숫자는 무얼 의미할까? 핸드볼 경기 스코어인가? 아니다. 34는 한국의 2010년도 자살률 33.5를 반올림한 숫자이고, 1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있는 선진국들의 평균 자살률 12.8을 반올림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선진국들의 평균치보다 2.5배나 더 높다는 말이다.

자살을 명예롭고 아름답게 미화한다고 소문난 일본도 10만 명 당 자살자의 수가 21.2명으로, 우리는 일본보다 50% 이상 높은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20년 전에는 이렇게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내외였을 당시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8.8명이었다. 1990년 당시 일본의 자살률은 17.5, 독일은 17.1, 스웨덴은 16.9로 우리나라의 8.8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년 후에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에서 2만2천 달러로 2배 이상 올랐고, 선진국들도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이상으로 2배 이상 올랐다. 지난 20년간 선진국들은 소득이 2배 이상 올랐고 자살률은 일본만 빼고 대부분 크게 감소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자살률이 2배 반 이상이나 높아져 버렸다. 특히,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을 보면 더욱 심각한데, 2010년 기준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 당 80.3명으로 OECD 평균의 4배에 달했다. 즉, 나라 전체의 자살률은 선진국 대비 2.5배 이상 높지만, 노인들의 자살률은 선진국 대비 4배 이상 높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20년 동안에 어떤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었고, 어떤 영향으로 인해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을까? 나라는 부자가 되고 국민소득은 평균적으로 올라갔지만, 나라에 비해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고, 소득격차가 벌어져 서민들의 삶은 오히려 더 팍팍해졌다는 반증이다. 특히 1997년 말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잉투자로 고전하던 대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이들 대기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도 도산하거나 합병되면서 덩치를 크게 줄였다. 2000년 이후 다시 대외경쟁력을 회복한 수출 대기업들은 호경기를 누리고 있지만, 중소기업과 내수기업들은 과거와 별로 다름이 없다.

경제구조도 변했지만, 사회구조도 많이 변했다. 고령화와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노인 인구의 비중은 늘고 있지만, 노인들은 외롭고 가난하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들 가운데 중위소득 미만에 속하는 노인들의 비율, 즉 노인 빈곤율이 2010년 기준 45.1%로서 세계 최고수준이다.

미국의 23.7%, 일본의 20.6%, 독일의 8.3%, 스웨덴의 6.1%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노인들의 노후준비가 부실하고, 거기다 가족관계가 단절되고, 공동체마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절망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2월 25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복지서비스의 향상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영유아 보육을 지원하는 지출을 늘려야 하며, 노인 빈곤율을 낮추고 노인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기초노령연금을 증액하고 노인돌봄 서비스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한번 실패한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실업수당도 늘리고, 직업훈련도 강화하고,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내실화하고, 고용정보 서비스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농산어촌에 흩어져 사는 노인들이 모여서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마을회관을 현대화하고 그룹 홈(group home)으로 개조하는 사업도 필요하다.

물론 나라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복지서비스 향상을 위해 필요한 돈은 많은데 나라살림은 넉넉지 않으며, 세금을 더 거두기도 어렵다. 하지만, 국민들이 세금의 부담을 조금씩 나눠지고,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어려운 숙제도 풀 수 있다. 34 대 13이라는 큰 격차를 줄여서 13 대 13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복지서비스를 늘리는 것과 더불어 주위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통해 공동체를 살려야 한다. 국민소득을 높이고, ‘돈 벌어 소고기 사묵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은 세계 최고의 자살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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