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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능력과 법에 근거한 인사를

 

1981년 프랑스에서 2차 대전 뒤로 30년 넘게 이어진 우파 집권을 끝내고 프랑수아 미테랑의 사회당이 정권을 잡았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의미의 공화국을 세운 민주국가 프랑스였지만, 좌파로의 정권 이동은 새로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노동운동과 일자리 문제, 복지 문제, 이민 정책 등등, 이전의 우파 정부와 비교하면 놀라운 차이가 있었다. 물론 모두 14년의 짧지 않은 기간을 통치하고 1995년 막을 내린 미테랑의 좌파 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의 유산은 현재 집권 중인 올랑드 사회당 정부를 통해서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할만한 사건이 하나 있다. 1995년 새로 들어선 우파 정부의 투봉 문화부장관은 바스티유 극장 음악감독 정명훈을 해임시킨다. 한국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그의 해임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계약 기간이 엄연히 남아 있는 예술가에 대한 정치적 압박행위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이러한 사태를 국가적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바스티유 극장 음악감독만의 해임이 아니라, 사실은 사회당 정부의 문화적 상징을 모두 지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테랑 정부는 14년 동안 프랑스 문화예술에 부인할 수 없는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낡은 국립도서관 대신, 건축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현대적 도서관을 센 강가에 새로 짓기로 하였고, 루브르 박물관의 리모델링을 외국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성공적으로 변모시켰으며,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감옥 자리에 현대적인 극장을 세웠다. 문화예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시각의 접근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변모가 권위주의로부터 평등으로, 엘리트만의 것이 아닌 모두가 누리는 문화예술의 방향으로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수요일과 주말의 심야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TV에서 세미-포르노를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정책은 원하는 국민이 있다면 국가는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는 미테랑 정부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문화예술 정책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미테랑의 연임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1995년 정권이 바뀌었을 때, 새로 집권한 우파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미테랑 정부의 문화적 상징을 지워야한다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표현이 바로 정명훈의 해임이었고, 당시 적지 않은 문화예술 기관장들이 함께 옷을 벗었다. 이러한 조치를 앞장서서 이끈 사람이 바로 문화부장관 투봉이었다. 그는 공용어에서 영어의 과도한 흔적을 지워야 한다며, 공공영역에서 프랑스어만을 쓸 것을 주장한 과격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투봉의 이러한 조치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을 대하는 데 이념적 색채를 앞세우는 게 온당한 것인가라는 비판이 일었다. 능력에 대한 평가나 객관적인 법률에 의거하지 않고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 문화예술의 공공성에 개입하는 나쁜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에 관한한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프랑스 국민들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였다. 따라서 투봉의 과격한 행보는 많은 논란을 일으킨 끝에 결국 우파 정부의 실각에 한 빌미가 되기도 하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아주 먼 나라의, 그것도 꽤 지난 일을 거론한 것은, 불과 5년 전 우리가 똑같은 장면을 이 땅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10년의 좌파 집권을 끝내고 들어선 MB정부의 초대 문화부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좌파 정부 10년 동안 이념적 색채를 공유하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특혜가 없지 않았다. 아니 정권 탄생에 기여한 사람들의 논공행상이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법적인 정치적 압박이 꼭 옳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야인이 된, 본인도 연극인인 그 장관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다. 정권 이동이 아닌 재창출이다. 그런데도 또 기관장 자리를 둘러싸고 일괄 사표 이야기가 들린다. 점령군처럼 자기 사람들로 자리를 채우려는 유혹이 생길 때다.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능력에 따른, 그리고 법에 따른 인사다. 그것이 결국 새 정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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