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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홍재연구소와 문·사·모 우정

 

고향을 떠나 수원에서 산 지 25년이 된 필자에게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커지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줄어든다 했던가.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겪게 마련인데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실로 막막하기만 할 터이다. 문·사·모 친구들은 그런 막막함을 말끔히 없애주는 이들이다. 수원에 살면서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모임’, 일명 ‘문·사·모’를 만들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문·사·모 친구 중에는 김영호가 있다. 김영호는 정조대왕의 정신이 깃든 도시인 수원에 무예24기의 기초를 심어준 사람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연구에 힘쓴 그는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이 보냈고, 겨울에는 난방시설도 없이 연구실에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던 친구가 화성행궁 주변에 한국병학연구소를 마련했다. 후배인 김준혁 교수와 함께 마련한 연구소는 홍재연구소로 명칭하고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한동안 전화가 뜸했던 친구는 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사·모 친구들 중에서 가장 바쁘게 지내고 있는 필자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단아한 명령조였다. 통화는 간결했지만 시간을 좀 내어 책 운반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한국병학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무예24기를 연구한 그에게 오랫동안 책은 가장 큰 보배였다.

어려운 경제여건 탓에 이곳저곳을 전전긍긍하면서 지내는 친구는 매년 보따리를 들고 배회하고 있었으나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이루기도 했기에, 필자는 늘 그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상가의 환경단체 사무실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은 참으로 비좁았고 건강을 악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경희대 교수로 재직한 후배 김준혁 교수가 곁에 있기에 좀 걱정을 덜었지만 연구실의 환경은 열악했다. 책 보따리들, 그의 정신의 무게들을 옮기며 가쁜 호흡을 몰아쉬면서 친구의 인생을 그려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은 무예도보통지 속 24가지의 기예인 무예24기를 이끌면서 적지 않는 텃세를 받아야 했다. 눈물겨운 여정들이 많았던 친구는 필자에게 눈물을 많이 감추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슴속에 도도히 흐르는 눈물을 필자에게 감출 수는 없었다. 그때마다 막걸리 잔으로 위로하던 필자는 돌아보니 너무 사치스런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경찰대학과 경찰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하면서 근래에는 경기도 곳곳을 순회하며 인성과 소양교육 강의를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에게 몇 번 특강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몇 번 요청하기도 했지만 일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새로 마련한 연구소는 화성행궁이 위치한 문화의 거리에 위치한 탓에 그의 작업 공간이 좀 부담스럽겠다는 사념이 들었다. 무예24기와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로 친구의 상처를 더듬고 싶지 않았기에 필자 역시 발길을 뚝 끊었던 곳 아닌가.

그런 길을 당사자인 친구가 다시 신의 거주지처럼 찾았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돌아보면 얼마나 가슴 아팠던 곳인가. 이사로 참여했던 필자와 태섭. 용국, 친구를 문화의 힘으로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컸을 뿐 아니라 그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데 늘 부족하기만 했었다.

새로운 연구실로 옮긴 친구의 모습은 평온해 보이면서도 무거운 마음들이 내재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랫동안 그 해답을 찾은 끝에 친구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왔다. 연구실에서 지내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나마 선물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도울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데, 친구는 고맙다는 한 통의 문자를 보내왔다. 그날 연구소의 책을 옮길 때는 필자뿐만 아니라 문·사·모의 또 다른 친구 보웅이도 함께했다.

두 친구와 함께 책들을 옮기면서 문·사·모 친구들의 크나큰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보다 더 가슴이 따뜻한 친구 보웅이는 자신의 모임도 마다하고 외로운 친구의 무거운 보따리를 챙겨주었다. 막걸리 뒤풀이 자리는 짧았지만 친구에게 위로가 분명 되었을 것이다. 정조의 도시 수원에서 친구 영호와 후배 김준혁 박사가 꾸려나가는 홍재연구소가 더욱 빛을 발하기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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