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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자소서’로 절망하기, 다시 서기

 

교양 글쓰기에서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글의 유형이 바로 자기소개서, 즉 ‘자소서’ 쓰기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만큼 정확하게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다보면 자신에 대해 치명적인 정보의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자기소개서 쓰기는 이력서 쓰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객관적인 근거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이력서와는 달리 자기소개서는 잘 써야 한다. 바로 이 잘 써야한다는 부분이 여러 학생들의 어깨에 부담을 얹어주고, 심지어는 절망하게 하고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준수한 외모에 유명 대학의 인기학과를 졸업하고 화려한 스펙을 마련해둔 사회초년생들도 때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여러 번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쓰기를 지도하다 보면, 예전에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던, 나름대로 안타깝고 절박한 사연들이 겹쳐 떠오르곤 한다. 거기에는 놀라울 만큼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런 글을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저는 엄부자모 슬하의 평범한 가정에서 2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너무 익숙해서 버려질 수밖에 없는 슬픈 표현이다.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하고, 학창시절 학생회 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키워왔으며….”

안타까운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이 학생은 드물게 성실하고 많은 부문에서 재능감을 보이는 재원이었다. 하지만 강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학생의 자기소개서 안에 들어있는 ‘무엇이든 잘 합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와 같은 이어지는 표현들은 결코 본인을 드러나게 만들 수 없었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안에는 무엇이든 잘 하는 사람보다 특정한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보여줄 인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렇게 똑같은 문장을 구사하는 만능맨들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외부 컨설팅 업체에서 자기소개서 쓰기에 대한 전문 상담까지 받아본 이들도 있었으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기소개서는 정말 잘 쓴 글이어야 하지만,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이나 문체가 세련된 명문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본 어법은 최대한 지켜 써야 하고, 읽는 이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문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정해진 자기소개서 분량 안에서 주어와 서술어는 반드시 호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으로서’는 자격을 나타낼 때, ‘-으로써’는 방법이나 수단을 나타낼 때 써야 한다는 점을 잔소리하기에 갈 길이 너무 멀다. ‘나는’과 ‘저는’을 글 안에서 혼용하지 말라든가, 전달하고자 하는 글의 내용을 정보량으로 볼 때, ‘-습니다’ 같은 경어체의 문장보다는 평어체인 ‘-이다/하다’를 사용하라는 빤한 지적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예를 들어 설명하되 중복을 피하고 관련된 데이터 수치를 적절히 활용하면 좋다는 것쯤은 학생들 사이에 이미 상식이 되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사람의 지나친 욕심이나 게으름이 되는 걸까?

자기소개서를 자기 자신만큼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자기소개서는 자기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다만 문제는 그 글이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련할 만큼 수없이 고쳐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준비된 인재를 만들어가야 한다. <남태평양 이야기>의 작가 미치너(James A. Michener)는 자신의 명문장에 대해 이런 표현을 남겨 세상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였다.

“나는 별로 좋은 작가가 아니다. 다만 남보다 자주 고쳐 쓸 뿐이다.”

미치너의 글쓰기 경지에 이르도록 고쳐 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을 뿐더러, 또 그럴 필요도 적다. 다만 자기소개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절망을 이겨내야 하고, 그 다음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절망을 떨쳐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서야 한다. 인사 담당자의 눈에 쏙 드는 맞춤형의 인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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