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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기부 유치는 마케팅이다

 

지난해 말 어느 늦은 밤에 일군의 사람들이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 아트센터를 찾았다. 미술관장이 직접 이들을 안내하며 작품 하나하나를 설명하였는데, 해박한 지식 덕에 모두들은 유쾌한 기분으로 작품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일반 관람객들이 모두 돌아간 시각이라 보다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음은 물론이다. 이 행사는 경기문화재단이 진행 중인 예술 기부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부자들을 예우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최근 한국에서도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대학과 병원들이 동문과 후원자들의 기부를 받아 교육과 연구, 의료 수준을 높여왔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문화예술계도 다양한 기부 유치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다양한 만큼 기부의 종류와 동기도 다양하다. 기부 종류는 크게 재산을 기부하는 것과 재능을 기부하는 두 가지가 있다. 재산을 기부하는 것도 거액(巨額) 기부와 소액(少額) 기부가 있다. 거액 기부자의 기부 동기를 보면 기부 요청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에 의해 기부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고, 이윤을 사회적으로 환원하여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기부도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기부의 가치를 알고 기부를 하는 경우이다. 소액 기부는 우리가 정기적으로 시민단체나 문화예술단체, 국제구호단체 등에 기부하는 경우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간에 기부자가 기부 가치에 충분히 공감한다면 그 모두가 아름다운 기부이다.

그런데 기부 유치 사업을 하다보면 기부 행위나 기부 유치에 대한 만만치 않은 오해를 만나게 된다. 기부가 단지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인에게 부탁해서 돈을 ‘얻어내는’ 행위라는 오해이다. 그래서 기부 유치에 나서는 사람도 어쩐지 꺼리는 마음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기부 유치가 언젠가는 되갚아야 할 빚을 지는 일 혹은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기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기부가 지인을 돕기 위한 일회성의 부조처럼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기부 행위를 생각해보면, 단언컨대 이는 오해이다. 우리가 시민단체나 국제구호단체 등에 기부하는 행위를 두고 그것이 돈을 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기부 대상에 대해 특별한 우월감을 가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기부 행위가 타인을 돕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기부 유치도 마찬가지다. 기부 유치 사업은 기부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이들을 찾아, 그들이 가진 재산과 재능이 보다 유의미한 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그들을 안내하는 일이다. 기부자들은 기부 행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기호를 재확인하고 사회적 만족을 획득한다. 따라서 기부 유치는 ‘도움을 받아내는 일’이면서 동시에 기부자들의 ‘사회적 성취감을 찾아주는’ 적극적인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부를 유치하는 과정은 정교한 마케팅 과정이어야 한다. 마치 보험설계사들이 가입대상자들의 필요를 정교하게 분석하여 그에 꼭 맞는 보험상품을 제시하는 것처럼, 기부 유치 역시 기부자들의 신념과 기호를 파악하고 그들의 사회적 성취감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형태를 고민해야 하고, 기부자의 조건에 따른 세심한 기부 유치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기부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 적극적으로 기부를 권유하고, 능력은 있으되 의사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다양한 형태의 기부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기부를 유도하고, 의사는 있으되 여유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소액 기부를 중심으로 기부를 유치하는 식이다. 기부가 이뤄진 후에 그 기부의 효과에 대해 기부자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기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아름다운 기부 행위를, 마치 수지타산을 맞추는 행위로 묘사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 하지만 기부 행위를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기부 유치 사업은 지금보다 더 전략적이고 정교한 마케팅이 되어야 한다. 백조가 수면 위에서 기품 있게 떠있을 수 있는 것이, 수면 아래에서 두 발이 쉴 새 없이 자맥질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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