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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시엔립의 수원마을

 

봉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봉사를 외치는 사람들이 구태의연해 보일 때가 있다. 더구나 돈이나 권력, 혹은 명예를 많이 가진 사람이 외치는 ‘봉사’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 민망하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가진 게 있어야 나눌 수 있는데, 왜 나는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의 ‘봉사’는 생명력이 없다고 느끼는지. 아마 그것은 나의 편견이리라. 돈이나 권력을 가졌으면서 ‘봉사’까지 가져간 선택된 사람들에 대한 질투일 수도 있고. 그러나 그것이 또 질투이기만 할까.

질투 속에 들어있는 한 점의 진실이 있다. 특정한 날, 봉사하러 간답시고 이것저것 싸들고 보육원이나 노인복지 시설을 방문해서는 줄 세워놓고 훈시하고, 사진 찍어 홍보에 이용하기 바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그들이 던져준 것으로 살아야 한다고 해도 봉사가 끝나면 관계도 끝나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까지 내야한다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봉사 자체가 위대한 게 아닐 수 있겠다. 봉사도 천차만별이다. 천박한 봉사도 있고, 따뜻한 봉사도 있다. 하나마나한 봉사도 있고, 삶을 바꾸는 봉사도 있다. 시간 낭비인 봉사도 있고, 소리 소문 없이 힘이 붙은 봉사도 있다. 확언하건대 봉사는 봉사하는 사람을 그대로 닮아 있다. 얼마 전 나는 봉사와 삶이 둘이 아님을 고백케 하는 봉사현장을 보았다.

세계적인 유적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엔립에 가면 수원마을이 있다. 수원시가 중고등학교를 지어주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우물을 파서 건기에도 물을 얻을 수 있게 해주어서 ‘수원마을’이 된 것이다. 수도를 틀면 언제나 물이 나오는 곳에서 사는 우리들은 물 없이 살 수 없으면서도 정작 물의 중요성은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세계에는 아직도 건기가 되면 물을 찾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착생활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물’인 사람들이.

수원시가 우물로 물 문제를 해결하니 모여 살 수 있게 되고, 수원시에서 지어준 중고등학교가 명문이 되어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원마을이 된 곳, 막상 그곳을 가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활기찬 마을을 만드는 데 수원시민들의 세금이 쓰인 것이 기쁘기까지 했다.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확인한 그 자리에서 세상은 돌고 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부모 없는 아이들을 거두며 그들과 함께 사는 스님을 보았다. 바로 수원사의 성관스님이다.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스님은 여기까지 왔을까?

17년 전 그는 무심코 앙코르와트를 순례했다. 그것은 거대한 문명이라기보다 지극한 신성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성을 아는 존재의 후예들이 원 달러를 구걸하며 달려드는 것을 보고, 이 아이들을 위해 삶을 회향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리고 차츰차츰 서원을 현실화했다. 부모가 없어서 방치된 아이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며 꿈을 심은 것이다.

그가 지은 로터스 월드는 그야말로 연꽃 세상이었다. 그곳은 규모면에서는 한국의 큰 절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온갖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잔디밭은 넓었다. 처소들은 소박하면서도 친근했다. 아이들이 입은 옷은 우리들이 기부한 헌옷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깨끗했고, 그들의 처소는 시엔립의 웬만한 가정보다 좋았다. 67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성관스님에게 그 아이들은 고아가 아니라 인연이 있어 모여든 삶의 도반들이었다.

그 안에는 병원도 있었다. 성관 스님과 뜻을 함께 하는 김안과의 김성주 원장이 한국의 병원에서 쓰는 시설과 똑같은 시설을 설치해서 실명할 뻔한 1천여명의 눈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실명 위기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느냐고 물으니 원인이 백내장이란다. 그대로 두면 실명이지만 수술해주고 경과를 봐주면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단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지만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이 일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말이다. 성관과 김성주, 종교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뜻으로 맺어진 좋은 도반이었다.

고통을 겨우 면하게 하는 수준의 봉사가 아니라 자기 수준으로 삶을 끌어올리는 봉사의 현장을 보며 나는 좋은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나눠줄 수 없으므로.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님을 깨닫는 기쁨도 진정한 나눔의 미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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