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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안녕, 경제민주화

 

마침내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민주화는 종결되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할 게 있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를 2번씩이나 언급했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렇다.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더불어 ‘제2의 한강의 기적’도 제시했다. ‘경제부흥’, ‘한강의 기적’ 참 오랜 만에 들어 보는 가슴 따뜻한(?) 말들 아닌가. 유신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고속성장을 하던 그때, 도덕이나 사회과목 수업이면 꼭 들어야 했던 낱말들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던 보릿고개, 적빈(赤貧)의 그 시절, 박정희는 ‘경제부흥’을 통한 조국근대화를 주창했고, 이제 대통령 박근혜는 또 한 번의 경제부흥과 ‘한강의 기적’을 약속한다. 박정희의 ‘한강’은 오직 독재 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박근혜의 ‘한강’을 위해 정치적 기본권과 자유를 반납할 의사가 전혀 없는 마당에, 그러한 정치적 조건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박근혜식 ‘경제부흥’은 어쩔 수 없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지금과 같은 글로벌경제 시대에 굳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절의 ‘경제부흥’이란 용어를 선택한 것이 적절했는지는 모르겠다. 하나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떤 하리, ‘국민행복시대’가 오기만 하면 될 일 아닌가.

내가 유감스럽게 보는 것은 차라리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저간의 사정이다. 주머니가 좀 불룩해진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독재치하라면 어느 국민이 ‘행복’하다 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경제민주화는 참으로 시대정신이자, 또 박 대통령의 엄중한 약속이다. 그런데 굳이 취임사에서 이를 다시금 환기한 것은 아무래도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란 용어 자체가 삭제된 데 따른 항간의 비판적 여론 때문이었다고 읽힌다. 앞서 인수위가 발표한 새 정부 국정과제에서는 경제민주화란 용어 대신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란 용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수위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후자가 더 ‘광의의’ 개념이라고 한다. 또 막상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 개념이 사용된 문맥도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이다. 주로 대중소기업의 상생과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문제 삼는 시각이다. 이렇게 저렇게 아무리 살펴봐도 경제민주화는 ‘시장’ 종속적 기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존의 시장경제에 좀 더 ‘원칙’과 공정을 가미하자는 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창조경제’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이는 그 어떤 학문적이거나 분석적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결국 이런 말이다. 경제민주화와 연관된 재벌개혁, 계층양극화라든가 하는 것은 어느 순간에 봄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그저 시장경제를 좀 더 잘 해보자는 것으로 그 뜻이 현저히 퇴색해 버린 것이다. 이런 식의 경제민주화는 헌법119조와 관련 우리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경제민주화 해석에도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 헌재판결에 따르자면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이렇게도 판결하고 있다. 그 이념은 “경제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추구할 수 있는 국가목표로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행위를 정당화하는 헌법규범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경제질서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시장경제를 뛰어 넘는 복지와 정의까지도 포괄하는 그러한 ‘사회적 시장경제’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약간의 해석상의 혼돈이 있더라도, 결국 정책이란 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 정부의 경제정책 수장들의 면면이 경제민주화에 부합되는지가 사실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된다. 안 된 말이지만 내각에서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비경제민주적’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경제민주화는 고사하고 공정경쟁이라도 방어해 낼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를 다시금 환기시켰다하더라도 그것이 립서비스 이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는, 대통령 주변 어디에도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동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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