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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이젠 아리랑 스타일이다

김동언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노래만큼 위대한 생명력을 지닌 것이 또 있을까? 슬플 때나 기쁠 때, 고난의 시기와 참혹한 전쟁의 순간에도 노래는 사람들과 함께해왔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모든 나라와 민족 곁에 머물러 온 노래의 생명력과 파급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지탱해주는 힘으로 변함없이 인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지난 25일 거행된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은 노래잔치였다. 식전행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현재까지의 각 시대별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뮤지컬 형식이었다. 마지막 순서로 세계적 열풍의 주인공 싸이가 등장해 행사에 참여한 이들과 신나게 말춤을 추며 ‘강남 스타일’을 불러 한껏 흥을 돋웠다. 공식행사 순서 역시 노래가 흐름을 주도했다. 국민합창단과 두 명의 성악가가 부른 애국가, 축하무대, 그리고 행사의 마무리 곡으로 선택된 ‘나의 살던 고향’과 ‘행복을 주는 사람’까지. 그 중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무엇보다도 축하무대의 ‘아리랑 판타지’였다. 안숙선 명창, 가수 인순이, 뮤지컬 배우 최정원,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편곡자 양방원과 함께한 아리랑은, 세계무대에서 ‘아리랑 스타일’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를 보여주었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로 의미 있는 순간마다 전 세계로 울려 퍼진 선율이, 이번 대통령 취임식의 축하 연주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에서다.

아리랑은 언제나 한민족과 함께였다. 한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어김없이 아리랑이 있어서 다양한 선율과 가사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밀양아리랑은 춤의 고장 경상도답게 첫 구절만 나와도 어깨를 들썩이는 경쾌함이 있다. 구성지고 유장하며 멋스런 남도 소리인 진도 아리랑 가락에는 다양한 인간의 감정이 스며있다. 정선아리랑은 선율이 단순하고 길이가 짧아 누구나 가사를 붙이기만 하면 노래가 되는 ‘열린 아리랑’이다. 공식적으로 채록된 것만 3천여 수가 넘는다고 한다. 누구나 작사가가 될 수 있다.

세계 속의 아리랑은 의미가 각별하다. 1991년 4월29일, 일본 지바현 나폰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결승전에서 최초의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가 대회 9연패를 노리는 중국을 누르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시상식에서는 한반도를 그려 넣은 단일기가 오르고, 남북이 한 목소리로 단일팀의 단가 아리랑을 불렀다. 역사적인 이 순간을 방송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볼 수 있었다. 2008년 2월26일,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북한의 동평양대극장 무대에 섰다. 연주 후, 공연장을 가득 메운 북한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며 기립 박수를 보내는 장면을 전 세계가 지켜본 역사적인 공연이었다. 2011년 4월 30일, 김연아 선수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메가스포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2011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제목의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을 연기하며 전 세계에 한국의 ‘아리랑’ 선율을 소개했다. 이 곡들의 주선율의 본조 아리랑은 1926년 10월 개봉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사용되었다. 나운규가 어린 시절 들었던 민요 아리랑이 영화 <아리랑>에 담기면서 아리랑의 대표 선율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제국주의에 항거하고 민족적 울분을 호소하며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시켜 주었던 노래가 세계 속에 울려 퍼진 것이다.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한민족의 오랜 삶과 역사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하며 이질적 요소와 융합하는 거대한 예술의 한 장르라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이제껏 아리랑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있었지만 현 시대의 흐름과 정신으로 세계인들과 더욱 잘 호흡할 수 있는 창작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인의 문화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전략도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 특유의 음악적 특징과 감정 표현에서 시작한 재즈가 오늘날 세계 음악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훌륭한 사례다. 재즈의 자유로운 정신과 수용력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는 세계의 예술 속에 ‘아리랑 스타일’이 거대한 물줄기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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