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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취호탈(巧取豪奪)이란 말이 있다. ‘교묘한 수단으로 빼앗아 취한다’는 뜻으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남의 귀중한 물건을 가로채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북송에 ‘미불’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서예가, 화가로 명성이 높았으며 규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기이한 행동이 심했던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미우인’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만큼이나 서화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옛 선배 서예가, 화가들의 작품을 좋아하여 닥치는 대로 모았던 수집광이었는데, 그도 아버지처럼 기이한 행동이 남달랐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미우인’의 그림에 대한 천재성은 아무리 복잡한 그림이라 하더라도 한 번만 보면 그대로 복제할 만큼 뛰어났는데, 그가 한 번만 눈여겨보고 그린 그림은 원 저자도 헷갈릴 정도로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배를 타고 가다가 왕희지의 진품 서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는 본래 남의 작품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는 재주가 있었으므로 잠깐 동안이면 진품과 모조품을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그릴 수 있었다. 어쩌다가 뒤늦게 진품이 바뀐 것을 알고 돌려달라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대개는 속아 넘어갈 정도로 정교하게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그의 집에는 항상 진품이 넘쳐 났으며, 그에게 그림을 빌려준 사람은 모조품을 소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특출한 기술이 있는 ‘미우인’이 왕희지의 진품 서첩을 보았으니 욕심이 없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그에게 며칠만 빌려 달라고 간청하여 드디어 며칠 동안 ‘짝퉁’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왕희지의 그림을 그대로 복제한 후에 그는 이번에도 모조품을 돌려주었는데, 며칠 후에 진품이 바뀐 것을 알고 주인이 이를 돌려 달라고 찾아오게 된다.

전문가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복제했는데 촌부로 알았던 그의 변별력에 놀라 어떻게 진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느냐고 물었다. “내 그림에는 소의 눈동자에 목동이 그려져 있는데, 당신이 내게 준 그림에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아무리 천하에 모조품을 잘 그린 ‘미우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진품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천하의 ‘미우인’이라도 왕희지의 그림만은 쉽게 흉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왕희지는 소의 눈동자에 목동의 모습을 희미하게 그려 넣었던 것이다. 설령 소의 눈동자에 의도적으로 목동의 모습을 그려 넣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소는 목동이라는 주인과의 교감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형상인지도 모른다.

요즘 ‘짝퉁’이 기승을 부린다. 모조품이 진품을 몰아내고 가짜가 진짜의 껍데기를 쓰고 그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그런데 보석이나 가전제품에만 이미테이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진짜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란한 솜씨를 자랑하며, 진짜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도 넘쳐나고 있다.

개혁을 표방하면서도 이중적인 처세에 길들여져 있고, 무늬만 비슷할 뿐 속은 완전히 다른 ‘짝퉁’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복제 기술이 뛰어나도 왕희지의 그림만큼은 완벽하게 재현해 내지 못했던 ‘미우인’처럼 언젠가는 들통 나게 되어 있다. 진실이 아닌 것은 오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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