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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밖의 지식으로부터 나의 지혜로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 삶의 시간이 참 더디게 느껴졌다. 미래는 너무 멀고, 과거는 늘 붙어 있어서 빨리 늙고자 조바심을 치기도 했다. 그때 스승들은 우리의 그 시간이 아름답다고 했다. 이제 조금씩 삶의 시간이 빨라지기 시작해서, 어느 순간엔가는 쏜살같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고 말이다.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런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시간은 걷잡을 수 없게 지나가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내가 대학생이 던 30년 전만 하더라도 비디오는 최첨단 영상기기였다. 발밑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냄새나는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편안히 영화를 볼 수 있다니! 놀라운 변화였다. 그것을 갖고 싶어 안달하다 졸업 다음해인 1990년 국립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거금을 주고서야 살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20여 년 만에 쓸모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런 변화는 비디오만이 아니다. 아날로그 카메라가 그러하고, CD가 그러하며, 불과 서너 해 전까지 스타일을 겨루던 2G폰 역시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자동차에서는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어졌고, 누구나 들고 다니던 소니 워크맨도 골동품 상점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었다. 노트북에서는 DVD 플레이어가 사라졌고, 엄지손톱만한 저장장치 USB조차도 조만간 그런 운명을 맞을 것이다. 디지털 정보혁명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이런 물질적인 변화는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도 어렵다.

물질적 변화는 다른 변화를 동반한다. 가장 중요한 변화를 꼽으라면, 그것은 당연히 지식의 확장이다. 오늘날 키보드 몇 개만 두드리면 ‘거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약간의 검색 기술만 있다면, 과거엔 엄두도 못 내던 온갖 지식에 접근 가능해진 것이다. 거실 벽의 서재를 무겁게 채운 백과사전보다 더 많은 지식이 스마트폰 속으로 언제든 호출될 수 있는 시대, 인류 역사상 지식 앞에서 이처럼 당당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똑똑해진 것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노동은 줄어들지 않았고, 사회 갈등은 여전하며, 전지구적 위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첨단 디지털 문명의 그 엄청난 지식으로도 인간 존재의 사소한 안정과 행복조차 얻을 수 없으며, 가정의 단란함도 보장하지 못 한다. 식구들 각자가 스마트폰 속에 머리를 박고는 외로움에 어쩔 줄 모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책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신간이 쏟아져 나오지만, 호머의 서사시나 그리스의 고대비극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능가하는 작품은 쉽게 보기 어렵다. 이 혼돈의 시대에 사람들은 오히려 오래된 고전을 찾는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스마트폰의 새끼손톱만한 카메라만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고, 또 쉽게 꺼내볼 수 있는 이 첨단의 시대가 과연 흘러간 과거의 고전 영화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나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보다 나은 요즘 영화를 찾기란 아주 어렵다. 아무리 객관적 지식이 넘쳐나도 뛰어난 작품이 보여주는 지혜에는 쉽게 가 닿지 못하는 것이다.

양적 팽창이 질적 성숙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바깥의 지식이 내 존재와 삶을 비추는 통찰의 지혜가 되려면, 그것은 다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아쉽지만 우리는 그런 지혜에 여전히 서투르며, 오히려 과도한 지식이 그 지혜의 길을 가로막기까지 한다. 게다가 우리는 근대화에 뒤진 나머지 ‘새것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우리의 과거를 내다버리다시피 하며 서양의 새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새 지식은 금방 쓸모없는 헌것이 되어버렸다. 시간과 함께 낡은 것으로 변하는 엄청난 양의 지식에 짓눌려 변하지 않는 지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러니 손쉬운 지식에 머무르지 말고, 나를 발견하고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지니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게 디지털 정보혁명의 첨단 문명을 살아갈 우리의 과제다. 따라서 새 정부의 문화정책은 변하는 지식 못지않게 변하지 않을 지혜, 즉 ‘오래된 미래’로서의 ‘우리 것’을 찾는 데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문화융성은 우리가 얼마만큼 우리 자신을 아느냐의 지혜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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