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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치]세종대왕도 인사는 만사(萬事)

 

일어나선 안 될 일이 터졌다. ‘고위층 별장 성접대’ 연루 의혹으로 법무차관이 취임한 지 6일 만에 물러났다. 이쯤 되면 청와대의 인사 검증시스템이 먹통이라고 진단할 수밖에 없다. 스캔들 관련 첩보를 사전에 접수하고도 걸러내지 못한 민정라인의 책임이 특히 무겁다. 언론에 보도된 “차관에 대한 인사권자는 장관”이라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너무나도 구차스러운 변명에는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다. 대통령을 향해 번져나가는 비난의 불길을 차단하려는 ‘충정’이야 이해가지 않는 바가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의 인사 난맥상은 집권 초기의 시행착오로 봐주기에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공직자 백지신탁에 대한 사전정보 부족으로 자진사퇴한 황철주 전 중기청장 내정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검증과정이 요식행위에 그쳤음을 반증한다.

가장 심각한 케이스는 김병관 전 국방장관 후보자의 경우였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던 역대 국방장관과 합참의장과는 달리 김 전 후보자는 무기중개상의 로비스트, 연평도 피격 다음날 일본 온천여행 등 30가지가 넘는 ‘비리 의혹 백화점’임이 밝혀졌다. 더군다나 청문회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의 자원개발 특혜 의혹 관련 주식을 보유하고 미얀마 방문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런데도 김 전 후보자는 의혹이 터질 때마다 변명으로 일관하며 버티다가 인사권자에게 부담만 안기고 결국 내정된 지 38일 만에 낙마했다. 만시지탄이지만 국민여론에 의한 김 전 후보자의 ‘강제퇴장’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김 전 후보자가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흠집투성이인 국방장관이 60만 국군 장병을 지휘·통솔하며 군령을 제대로 세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청문계획서조차 채택을 못하고 있는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우도 문제가 많다. 한 후보자는 유능한 조세법률 전문가로서 20여 년간 대형로펌에 근무하면서 대기업을 변호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다른 자리도 아니고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감시할 ‘경제검찰’의 수장으로 내세운 것은 경제민주화가 화두인 시대에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인사 난맥상의 책임을 “지나친 신상털기 때문”이라며 청문회 탓으로 떠넘기고 있다. 이런 잣대라면 김대중 정부에서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지명되었던 장상 당시 이화여대 총장의 경우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선(先) 사전검증, 후(後) 정책청문회를 실시하는 미국의 제도도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백악관 인사국을 중심으로 연방수사국, 국세청 등이 예비후보자의 전과, 납세, 재산 등 200여 항목에 대해 철저하게 사전조사한 뒤 문제가 없는 경우에만 후보자로 지명하기 때문에 의회에서 정책청문회가 가능하며, 상원의 인준을 얻어야 하는 직위가 1천200여개에 이른다. 우리의 경우도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효율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공직후보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소모적 낭비를 피하면서도 부적격 후보는 자연스럽게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제도 개선 이전에 더욱 시급한 일은 대통령이 ‘나홀로 낙점’하는 불통 인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설령 ‘실수’가 있더라도 언론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시정’하겠다는 열린 자세와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아쉽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오늘에도 평가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적재적소에 훌륭한 인재를 배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시대에도 오늘날의 인사청문회에 해당하는 ‘3단계 인재검증 시스템’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인사담당관이 관직 후보의 경력과 자질, 부패혐의, 가족관계 등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후보로 올리는 ‘정가간택(精加揀擇)’으로, 오늘의 ‘현미경 검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가 인사담당 부서인 이조 내부관원들의 평가를 다시 모으는 ‘경여평론(更與評論)’, 세 번째 단계가 반드시 바깥 여론을 들어본 후 의견이 모아지면 임명하는 ‘중의부동(衆議孚同)’이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가 만사(萬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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