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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IN]관행이라는 이름의 성접대 근절되어야

 

3월 초에 1주일 정도 파키스탄에 다녀왔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요청으로 파키스탄에서 진행 중인 공적원조사업에 젠더 전문가로 다녀오게 되었다. 처음 가는 나라인지라 사전 조사를 많이 했다. 자료를 찾던 중 파키스탄의 성불평등과 여성의 지위향상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하여 다량의 연구논문을 쓴 현지 남성 연구자를 발굴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은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가 2012년 세계 135국 중 134위인 나라로 성불평등 수준이 심각한데, 그런 중에 이슬람 남성 연구자의 성평등에 대한 관심과 연구 성과를 보게 되어 참으로 반가웠다.

그러나 나의 반가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 연구자의 박사학위 논문에 나와 있는 감사의 글을 보다가, 그의 부인이 여러 명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글에는 학위를 마치는 데 도움을 준 알라 신과, 지도교수들과, 부모님, 그리고 ‘아내들’에게 감사하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 대목에서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 나라의 남성들은 이슬람의 옛 관행대로 일부다처를 유지하는가? 이런 관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남녀에게 수용되는가? 파키스탄 현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던 중에,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두 번째 부인을 들이는 일은, 첫 번째 부인의 동의가 필요하고, 부인의 입장에선 이혼 요구 사유가 될 만큼 흔치 않은 일이라면서 성평등 연구자가 여러 명의 부인이 있다는 데 대해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관행이요 문화라는 말로 정당화하려 들면, 이슬람권 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 문제인 명예 살인, 염산 테러, 아동 결혼 등에 대해 비난하기 어려워진다. 전통이자 관행인데, 뭐가 문제인가라는 인식 때문에 그 관행은 현재도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내에서도 이러한 관행을 여성에 대한 폭력이요 심각한 인권유린으로 보고, 법으로 금지하며,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을 마련하고 있다.

요즘 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소위 원주별장게이트 사건을 보면, 정경이 유착한 성접대 관행이 역겨운 수준이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 중심에 있는 건설업자 윤모씨는 2000년 이후 사기, 횡령, 간통, 사문서 위조 등으로 20여 차례나 입건됐지만 한 번도 형사 처분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성접대 의혹에 연루된 사람들 중에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이 포함됐다고 거론되는데, 정치권력과 윤씨 사이에 대가성 뇌물수수가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접대문화에서 성의 상품화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지 9년째, 성을 구매하는 성매매가 불법화 되었지만, 성접대는 마치 당연한 관행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는 술과 여성이 있어야 제대로 대접받았다고 생각하는 남성중심의 접대문화가 낳은 산물이며, 여기에 고위 권력이 얹히면 부패권력, 경제비리가 생겨나게 된다.

현재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별장게이트 사건의 진상이 어디까지 밝혀질지, 국민들은 궁금해 하면서도 한편으론 진즉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4년 전 故 장자연씨 사건이 그랬듯이, 어쩌면 작금의 사건도 주전자 물 끓듯 떠들썩하다가 결국 조용히 덮일 것이라는 불신 때문일 것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는 “이번 사건은 그간 끊임없이 이어진 고위 공직자와 사회지도층의 금품과 성상납 관행으로 얼룩진 비리 청탁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의 신체와 인격에 대한 폄하와 성차별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욱 유감스럽다”고 밝히고, “경찰은 철저한 수사와 명백한 진상규명을 통해 잘못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처벌함으로써 무너진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고 다시는 이러한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여협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뿌리 깊은 관행을 근절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관행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들은 이슬람권의 여성 인권유린 사례들처럼 여성의 삶과 그 사회에 파괴적인 결과들을 낳는다. 성의 상품화를 당연시하는 남성중심의 성접대 관행,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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