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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도 다 가는데 봄은 참 더디게도 온다. 유달리 혹독했던 추위를 견뎌낸 터라 이제 그만 겨울의 흔적을 몰아내고 포근한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지만, 간절한 기다림을 놀리기라도 하듯 꽃샘추위가 3월 한 달을 온통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다. 쉽게 내주기 아깝다는 듯이. 이러다가 피어나는 꽃과 달큰한 봄바람에 나른하게 취할 새도 없이 금세 여름 날씨가 찾아오면 아까워서 어쩌나 지레 걱정이다.

‘봄’으로 시작하는 여러 가지 복합명사들, 봄날, 봄밤, 봄나들이, 봄나물, 봄비, 봄노래, 봄꽃 등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설레고 행복하다. 그런데 ‘봄꿈’이라는 단어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단순히 ‘봄날에 꾸는 꿈’ 이상의 복합적인 말맛이 있다. 국어사전 역시 ‘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그려 보는 꿈’이라거나 ‘한때의 덧없는 일이나 헛된 공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어의를 제시한다.

만해 한용운의 ‘춘몽(春夢)’이라는 한시의 내용이다.

“꿈은 떨어지는 꽃 같고 꽃은 꿈 같은데 / 사람은 어찌 나비가 되고 나비는 어찌 사람 되는가 / 나비 꽃 사람 꿈이 모두 마음의 일이니 / 봄의 신에게 하소연해 봄을 붙잡았으면”

꿈과 나비는 장자의 호접춘몽을 인용한 것인데,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는 고사로, 동서고금을 통해 여러 작품의 모티브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봄의 신에게 부탁해서라도 좋은 계절을 계속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애틋하기도 하고 덧없기도 하다. 시절을 느끼는 정서만은 옛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뿐이다.

서양에도 ‘봄꿈’을 담은 시가 있다.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겨울여행(Die Winterreise)’ 연작 중 하나인데, 우리에게는 ‘겨울나그네’라는 번역으로 잘 알려진 슈베르트의 연가곡 중 ‘봄꿈’이 그것이다. 실연한 청년의 절망과 체념이 버무려진 심정을 그린 노래인데 역시 ‘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그려보는 꿈’에 해당한다.

“꿈속에서 5월에 피어나는 화려한 꽃들을 보고 /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는 푸른 들을 보았지만 / 닭울음소리에 눈 떠보니 그곳은 차갑고 어두운 곳…”

나른하고 아련해서 도저히 현실로 이룰 것 같지 않은 꿈이라 해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원한다고 다 제 맘대로 이루어지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꿈이라도 꿀 수 있어야 고단한 현실을 버티고 견딜 수 있으리라. 꿈은 실컷 달콤해도 좋고 날개를 달아도 좋다. 봄에 꾸는 꿈은 더욱 그렇다. 새순이 돋고, 지난 상처를 달래줄 부드러운 바람도 불 테니 말이다.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을 새 정부의 3대 약속으로 제시하며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 … 우리 정신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문화를 국정운영의 중요한 축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문화가 융성한 나라는 국민 개개인이 문화 향수권을 마음껏 누리고 다양한 가치와 표현이 존중되며 빈부나 성별이, 나이나 피부색이 그 어떤 걸림돌도 되지 않는 사회, 아마도 그런 나라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대립과 반목이 팽배하고 자신이 가진 기득권은 절대 남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세력이 행세하는 시절이다. 문화가 융성한 나라가 될까? 글쎄다.

일상의 언어 표현 중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라는 뜻이고,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다르다’를 써야 할 때 ‘틀리다’를 쓴다. 나와 남이 달라도 ‘틀리다’로, 성격이 달라도 ‘틀린’ 성격으로, 생각이 서로 달라도 ‘틀리다’고 말한다. 이렇게 ‘다르다’를 써야 할 때 ‘틀리다’를 쓰는 언어 습관의 이면에서는 내 생각, 내 주장,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이기심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틀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문화에 있다.

찬란한 봄날, 늘 그러했듯이 이 기대가 덧없고 헛된 한바탕 봄꿈이 될지라도 내 맘껏 꿈을 꾸어본다. 앞으로 새 정부가 문화가 융성한 세상이 되도록 정책 수립과 제도를 마련하고 그런 것들을 실천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의지와 실천이 뒤따르기를. 그래서 박 대통령의 말처럼 문화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훌륭한 처방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꿈 한 번 한껏 신나고 행복하게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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