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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치]‘백년전쟁’ 유감

 

작년 대선을 앞두고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상물, ‘백년전쟁’으로 촉발된 역사논쟁은 위험천만이다. 오로지 ‘친일’과 ‘반일’, ‘독립’과 ‘자주’의 이분법적 사고로 난도질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오류투성이 영상물에 의한 사회적 선동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실제 ‘민족문제연구소’가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 다큐’를 표방하며 내놓은 문제의 영상물은 교묘한 편집기능이 압권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을 ‘입맛대로’ 훼손시킨 혐의가 짙다. 객관성과 사실성을 생명으로 하는 역사 다큐멘터리로서 최소한의 격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맷집이다. 사안을 입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단편적 지식전달에 그쳤으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백년전쟁’ 영상에 ‘찍힌’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은 천하에 없는 파렴치범이고 패륜아다. 주장에 대한 합당한 근거는 물론 명확한 논리도 없이 우김질이니 얼척이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자금을 빼돌려 사치를 즐긴 인간 말종, 국토분단의 주역 그리고 친일반역이다. 그것도 모자라 어린 제자를 상대로 불륜을 저지르거나 하버드 박사학위 과정이 석연찮다고 압박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도 다르지 않은 대접이다. 경제부흥 업적은 오로지 미국의 경제지배로 얻은 수혜의 결과이거나 미국정부의 비판과 수정과정에 힘입어 도입된 수출위주 경제시스템 덕을 본 것일 뿐이라고 이죽거린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 별명이 ‘스네이크 박’이었다며 영상 속 화면 가득 얼굴과 뱀 머리를 나란히 배치해 전직 대통령을 욕보이고자 안간힘을 쓰는 소아병적 조악함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크게 없다. 고작 히틀러의 괴벨스가 울고 갈 만큼 현란한 조작술에 혀를 내두르며 놀라는 게 전부이지 싶다.

물론 대한민국 건립 이후, 극단적 이념대립을 이루는 구도 하에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항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격동의 소용돌이를 뚫고 반세기만에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는 자부심이나 그 성공의 과정이 출발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자기성찰 모두,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번 ‘백년전쟁’의 왜곡 행보는 확실히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진영논리가 중하고 각각의 신념이 다르다 해도 역사는 사실에 기초해야 하는 명제만큼은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박사학위 관련 공격만 해도 억지의 극치다. 프린스턴 대학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어떻게 하버드 석사학위가 가능했느냐는 타박인데 개방적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석박사 통합 시스템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특히 1910년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영향을 받는 영세중립론’(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은 지금까지도 각국의 학생들이 참고하고 인용하는 우수논문인데 말이다.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활용되던 아니면 말고 식의 흑색선전이 역사 다큐멘터리 영역까지 파고든 현실이 경악스럽다. 특히 젊은 층이 왜곡된 역사다큐멘터리에 현혹돼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니 큰일이다. 국사 교육이 선택과목으로 전락돼 제대로 된 국사 교육, 근현대사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 원인이 크다.

그런데 국사 교육 못지않게 시급한 현안이 더 있다. 최근 절도범에 의해 우리나라로 밀반입된 관세음보살좌상 환수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는데 우리 문화재도 타국을 떠돌고 있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을 기준,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14만9천126점으로 이 중 6.5%인 9천751점만 국내로 환수되었다. 일본에만 6만6천295점이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문화재를 원래의 생산국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돼 있지 않고,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모든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터다. 결국 정치권 및 종교계, 역사학계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는 셈이다.

후손들을 위해 조상들이 남긴 역사와 문화재를 지켜내는 일은 그 무엇보다 심오한 가치이며,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본적인 의무이자 가장 아름다운 책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공연한 이념대립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 지킴이’를 자처하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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