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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씁쓸한 일제고사의 추억

 

초등학교 일제고사가 폐지됐다. 딱 5년 만이다. 환영할 일이긴 한데, 어째 마음이 개운치 않다. 이리 쉽게 없앨 수 있는 걸 그동안 애들을 왜 그리 들볶았지? 초등학생들이 교육실험 마루타인가? 해마다 봄가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됐던 징계 소동은 교육 관료들이 심심해서 벌인 일이었던가?

여기서 잠시 일제고사 부활과 폐지의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복기해보자.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10년소계’는커녕 ‘5년단견’에 갇혀버린 한국 교육의 현실이 상징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MB표 일제고사’는 과연 무엇이 문제였던가?

초등학교 일제고사는 2008년 3월 ‘국가수준 학력성취도 평가’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활했다. 백해무익하다 하여 폐지된 지 10여 년 만이다. 부활 명분은 한국 교육의 수준을 높이려면 일괄 평가를 통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상당수 교육학자, 교사, 학부모가 일견 그럴싸하지만 허점투성이인 논리라며 반발했다. 아무리 포장을 잘 한다 해도 일제고사는 성적순 줄 세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갓 출범한 정부의 위세와 일부 언론의 지원 속에 소신이 의심스러운 교육학자, 교육 관료, 교육관계자들이 일제고사를 옹호하고 나섬으로써 소모적인 여론 싸움이 벌어졌다.

(‘소신이 의심스러운’이라는 관형구는 객관적인 표현이 아니다. 검증이 안 된 가치평가다. 하지만 어쩌면 모욕적으로 들릴지 모르는 이 표현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일제고사가 다시 폐지된 현 시점에서, ‘일제고사를 없애면 큰일 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튼 일제고사가 강행되자 용감한 학부모들은 애들을 학교 대신 체험학습에 보냈다. 용기 있는 교사들은 이 아이들을 결석처리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그런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나섰고, 일부 교육청은 그리 못하겠다고 맞섰다. 이 소모적인 싸움은 몇 년 간이나 되풀이됐다. 한국 교육에서 흔히 목격되는, 교육 문제를 둘러싼 비교육적 공방의 일례다.

그렇다면, ‘MB표 일제고사’는 왜 폐지됐나?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아져서? 교육환경이 크게 향상되어서? 그게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전임 정부는 학생들의 입장을 철저히 외면했다. 초등학교에 0교시가 생기는 어이없는 현실에도 눈 감았다. 새 정부는 단지 쌓이고 쌓인 그 원망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뚜렷한 교육철학에 입각해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일제고사 폐지 말고도 중학교 자율학기제 도입,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 제정, 대입전형 3년 예고제 등 몇몇 정책이 눈에 띄기는 한다. 하지만 교육부가 지난주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3 국정과제 실천계획’을 보면 일제고사 폐지 외엔 뚜렷이 확정된 내용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우리는 전 정부와 다르다’는 정도인데, 아직은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아리송하다.

MB정부의 교육 실정을 바로잡으려면 일제고사 폐지 하나만으론 턱도 없다. 무엇보다도 자율형사립고 전교1등마저 극단적 선택으로 내모는 ‘입시지옥’을 해소해나갈 확고한 교육개혁의지가 필요하다. 지난 5년 동안 대책도 없이 해체시켜버린 ‘고교 평준화 시스템’을 어떻게 추슬러 나갈 것인지도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 그런 밑그림은 안 보인다.

지난주 교육부 보고 직후 입학사정관제 폐지 소동이 빚어졌다. 교육부가 대입 전형을 간소화할 방침이라고만 밝힌 채 구체적인 내용은 8월로 미뤄버렸고, 그 와중에 일부 언론이 2015년부터 입학사정관제가 폐지된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학생과 학부모들의 문의와 항의가 폭주하는 등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바로 이런, 너나없이 입시에 목매는 모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는 근본적 고민과 개혁의지가 절실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교육부의 보고를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교육이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려면 교실 틀 안에서만 갇혀 있는 그런 교육정책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열린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이 추상적인 방향성을 구체화시켜 나갈 리더십이다. 앞으로 5년도 소신이 의심스러운 교육 관료와 교육관계자들이 어영부영 자리를 차지하고 대충 뭉개다가 지나가도록 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도 아이들은 절망하고, 절망하고, 또 절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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