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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일칼럼]대학생과 음주의 향연

 

새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새 학기의 시작은 3월이다.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설렘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 가고 봄기운이 만연한 4월이다. 기대와 희망으로 첫발을 내딛는 신입생들이 있기에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캠퍼스에는 활기가 넘친다.

즐겁고 행복한 출발점이 되어야 할 이때에 신입생 환영회나 MT 등으로 음주와 관련한 사건 사고가 심심찮게 언론을 장식한다. 이에 각 대학에서는 올해부터 음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급기야 모 대학은 교내 음주 시 퇴학 조치까지 강행 한다는 강력한 학칙을 제정하여 언론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대학생들의 음주 문화뿐 아니라 음주 습관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음주 사고와 관련된 작금의 현상을 바라보면서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음주 문화를 되돌아보게 된다. 음주와 관련한 전통적인 주도(酒道)는 유교적 윤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의 전통에는 유교 육례(六禮) 중 하나인 향음주례(鄕飮酒禮)라는 것이 있다. 이는 조선시대 선비나 유생들이 학덕과 연륜이 높은 분을 주빈으로 모시고 예절바른 주연(酒宴)을 즐기면서 예법을 배우는 의례로, 절제와 겸양의 미덕이 그 바탕이 된다.

향음주례가 미풍(美風)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예법을 통해 더불어 즐기는 일종의 윤리적 향연이기 때문이다. 이때 주법은 술잔 받는 사람이 서열상 위이면 바치는 사람의 팔이 받는 이 배꼽 위로 올라가서는 안 되고, 반대로 술잔 받는 이가 상대적으로 아랫사람이면 내리는 사람의 배꼽 위로 손이 올라가서는 안 되었다고 한다. 물론 윗사람에게는 두 손으로 바치되 두 손을 겹쳐야 할 때에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존우좌비(尊右左費)의 법통을 지켰다. 또한 윗사람이 술을 권하면 반드시 한번 사양을 하고 두 번째 권할 때 받아야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림으로써 마시는 행위를 보여서도 안 되는 것이 주법이요 법도였다. 전통 법도에서는 먹고 마시는 행위를 본능적인 욕구로 보아 상스럽게 여겼던 것이다.

주법에 내재한 위계 개념 때문인지 주고받으며 더불어 마시는 수작(酬酌)이 주도의 근본이었다. 이백을 비롯해 백낙천, 소동파 등이 혼자 마시는 독작(獨酌)을 즐겼던 반면 명종 때 명 정승이던 상진 대감은 혼자서 술잔을 들고 달뜨기를 기다렸다가 그림자와 주거니 받거니 수작을 즐겼는가 하면, 정승 신용개는 수작할 상대가 없으면 국화 화분과 잔을 주고받을 정도로 수작에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기묘사화로 강릉에 낙향한 선비 박공달과 박수량은 매일처럼 만나 술을 마셨는데 장마로 물이 불어 내를 건널 수 없을 때면 언덕을 마주하며 술병과 술잔을 들고 앉아 서로 권하며 수작을 하고나서야 마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수작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을 함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체 의식은 결속력을 요구하며 이러한 연대감은 위계에 따른 질서와 절제를 전제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입생 환영회 등을 통한 대학의 음주 문화 역시 선후배 간에 우의를 나누고 결속을 다진다는 건강한 의미로 출발했던 것이다.

이러한 미풍양속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성서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5장18절)”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절제가 전제되지 않을 때 이는 방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다양한 방식의 여가 문화를 통해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각 대학에서도 교칙 등을 통해 강제적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기보다는 학생회를 통해서나 학생들 스스로 올바른 대학문화를 세워갈 수 있도록 방안을 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주연을 즐기면서도 절제와 예법을 지킬 때 더 아름답고 공고한 공동체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을 옛 선현들의 지혜로운 모습을 통해 학생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듯이 옛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게 된다. 아름다운 주례를 통해 선후배가 공동체적 우의를 나누는 건전한 문화 확산이 아쉬운 새 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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