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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대한민국 헌법 제1조

 

학기 초마다 학생들과 함께 보는 동영상이 있다. 헌법학자 이국운 교수(한동대)의 짧은 특강을 담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읽는 세 가지 방식>이다. CBS TV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가운데 한 편인데, 인터넷에 제목을 치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이번 학기에도 민주주의 얘기를 꺼내기 전 동영상부터 틀었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본 영상인데도 진한 여운이 남는다. 헌법학자의 진심이 화면을 뚫고 전해진다고나 할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읽는 게 첫 번째 방식이다. 두 번째 방식은 숨은 주어를 찾아내 살려서 읽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들 문장에 주어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지목하는 주어는 헌법 전문에 나오는 ‘우리 대한국민’이다. 그는 이렇게 한 번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선창하는 그의 목소리는 벅찬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있는 듯 가늘게 떨린다. 여러분도 소리 내어 함께 읽어보시라. 모처럼 애국가를 불렀을 때처럼 뭉클하지 않은가? 첫 번째 방식으로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 교수는 세 번째 방식으로서 누군가를 앞에 두고 낭독해보자고 제안한다. 예컨대, 조선 총독이나 일본 국왕, 태조 이성계, 이승만 초대 대통령, 오늘날의 정치인들 앞에서 선언한다고 상상하자는 것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낭독하고 있는 나, 우리, 대한국민이 정말 대한민국의 주권자이고 권력의 원천이라는 엄숙한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지난 주말 여야가 헌법 개정 논의기구 추진에 합의했다. 개헌은 대선 공약이었으니까 놀라울 게 없는 소식이다. 19대 국회엔 이미 개헌연구모임이 구성돼 있다. 그래서인지 여론도 아직은 별 반향이 없다.

그러나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개헌은 상당히 파괴력이 강한 이슈다. 한번 뚜껑이 열리면 모든 의제를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얘기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슬쩍 비쳤다가 반발이 일자 얼른 도로 집어넣었다.

그 이전 개헌의 역사는 더 파란만장하다. 지금 헌법 역시 87년 6월 항쟁의 산물이다. 제헌국회 이래 평화로운 합의에 의해 헌법이 바뀐 전례가 없다. 이번엔 어떨까?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이 될 것이다. 이원집정부제니, 내각책임제니 말들은 많겠지만 초점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부록으로 대통령선거와 총선 및 지방선거의 주기를 조정하는 문제가 다뤄질 듯하다. 지방분권 강화, 감사원 국회 이관 등 몇몇 쟁점도 다뤄지리라 예상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갑자기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인을 향해 헌법 제1조를 큰 소리로 낭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치민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 나온다면, 개헌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철저하게 국민에게 묻고, 묻고, 또 물어서 진행해야 한다. 5년 단임이냐, 4년 중임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권자가 주권자로 대접받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그늘이 더 중시돼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87년 체제’가 4반세기를 넘어가면서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권력구조 변경은 국민의 자유와 평등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선거주기를 바꾼다 해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여전하다면 그런 개헌은 해서 뭘 하나. 좁은 틀에 갇혀 국민의 기본권 신장과 무관한 공론이나 벌일 바엔 87년 헌법을 제대로 지키는 게 낫다.

이제부터는 권력의 원천이면서도 권력에 치여 사는 국민일수록 헌법 제1조를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당신들 마음대로 헌법의 정신을 농락하지 마라! 그게 위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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