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의정칼럼]‘노력’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우리가 대화할 때 많이 쓰는 용어가 있다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린다. ‘좋아요’와 ‘아니요’를 분명히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는 역사(해방정국과 6·25전쟁,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념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가. 28만 인구 중 3만이 죽어간 제주 4·3사건이 떠오른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정확한 표현을 미루는 건 아닐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지요”가 아니라면, “그것은 이러저러 해서 안 됩니다”라고 정확히 답해야 상호 오해와 갈등이 증폭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답이 이렇게 나온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이 얼마나 애매한 표현인가? 잘 안 될 것 같은데 노력해보겠다는 것인가? 노력해보다 안 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인가?

책을 읽다가 재미난 구절을 읽었다. “의자를 들어 올리려고 ‘노력’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가능한 건 둘 중 하나다. 들어 올리거나 들어 올리지 않거나, 들어 올릴 수 있거나 들어 올릴 수 없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하지만 ‘노력’할 수는 없다. 의자를 들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라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임무다.”([두 남자의 미니멀라이프]) 허가 푹 찔리는 문구였다.

이 글의 요지는 ‘노력’하는 대신 그냥 의자를 들어 올리라는 것이다. 노력을 그만 두고 그냥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어떤 행위에 앞서 과정과 절차, 의례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지 않나싶다.

지난번 임시회에 황당해서 말하기 창피한 일이 벌어졌다. 의원의 5분 자유발언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의원 다수가 표결하여 제지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의원의 ‘5분 자유발언’ 신청서에 의장이 서명했다. 그런데, 결재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유발언을 못하게 했다.

아니, 무슨 절차? 의원이 의장에게 신청하는 것 외에 어떤 절차? 구두로도 신청되는 것을. 이것을 따졌더니 ‘연필로 끼적거려서’ ‘정식 서류가 아니어서’란다. 자필로 쓰면 서류가 아니고, 타이핑 된 서류만이 정식 서류인가? 또 말했다. ‘의회에서 시장의 출장을 승인했는데 이제 와서 비판하느냐’고. 승인한 것을 비판하면 안 되나? 승인도 출장 전날 말한 것인데, 비판은 아무 때나 하면 안 되나? 결국에는 표결을 거치고 의원의 자유발언을 막았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유발언의 내용을 검열하여 막았다고 솔직히 말하라.

사과문을 써줬다. 그것을 보도자료로 하면 될 것을 ‘정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수정하더니 없던 일로 한다.

어느 시민이 전화를 걸어왔다. 의장을 만나려는데 직원이 꼬치꼬치 묻는다며 하소연한다. 그냥 만나게 해주면 될 것을 왜 ‘만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걸까? 모 단체의 총회가 있다. 그냥 참석하면 될 것을 초청장이 왔느냐고, 초청도 안 했는데 갈 수 없다한다. 초청장이라는 의례가 필요한 걸까? 선거 때는 초청해서 총회에 찾아가는 건가?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단순해졌으면 좋겠다. 의자를 들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의자를 들었으면 좋겠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