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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4대악 ‘척결’이라는 거짓말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이 4대악이라고? 일단 그렇다 치자. 더 큰 악도 얼마든지 있겠으나, 이 네 가지를 얼러 4대악이라 불러 안 될 것 없다. 불량식품이 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고, 격에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악만 완전히 사라져도 대한민국은 천국 혹은 낙원에 성큼 다가서지 않을까? 문제는 4대악을 과연 ‘척결’할 수 있느냐다.

인간의 땅 사바세계에서 악을 일소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근절’, ‘척결’은 단지 ‘뿌리 뽑고 싶다’는 염원을 담은 말치레일 뿐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대통령도, 이를 받들어 강력 실천을 부르짖는 경찰청장도, 연중무휴 단속에 동원되는 경찰들도, 지켜보는 국민도 다 안다. 그런데 왜 소동을 벌일까?

통치자가 바뀌었다는 강력한 사회적 시그널이다. 한바탕 난리굿이 벌어져야 저 바닥 서민들도 ‘아! 또 한 번 세상이 바뀌었구나’ 실감한다고 믿기에 벌이는 ‘사회적 쇼’인 거다. 역사를 돌이켜 보자. 5·16 군사쿠데타 뒤에는 국토재건단이, 5·18 뒤엔 삼청교육대가 생겼다. 조무래기 ‘악’을 전국적으로 ‘소탕’하는 상징 작업이다.

6공 때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됐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살아있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그 영화에서, 나쁜 놈들이 척결됐나? 아니다. 진짜 나쁜 놈들은 살아남았다. 아주 오래, 그것도 잘. 심지어 아들을 검사 영감으로 키워내지 않던가.

그 이후에도 이런 관행은 지속됐다. 대통령이 바뀌면 당면한 사회적 악과 OK목장의 결투를 벌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표명되고, 한바탕 난리굿이 빚어지곤 했다.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정권이 끝나도록 없애겠다던 악을 제거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4대악 척결은 그 새로운 버전일 따름이다.

이런 블랙코미디가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말했듯이 척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칼을 빼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악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전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건 허상, 허깨비와 싸우겠다는 얘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통치권자의 의지가 결연하다는 걸 보여주기는 해야겠고, 방법은 막연하니 뭔가 하고 있다는 헐리웃 액션을 강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지난 11일 민생치안 재정립 거악척결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4대악 척결에 부진한 지휘관은 문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이후 일선 경찰서마다 실적을 내느라 동분서주 난리를 치고 있다. <체포왕>이 되어 승진하느냐, 무능하다고 찍혀 변두리로 쫓겨나느냐가 걸린 절박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라도 공권력이 4대악을 없애기 위해 열심히 뛰는 건 비난할 일이 아니다. 척결이 되느냐 마느냐는 나중에 셈해 보기로 하고 일단 눈에 보이는 악은 없애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예상치 않은 부작용이 터져 나오니 탈이다.

예를 들어 요즘 학교 앞 문방구들은 죽을 맛이라 한다.(본보 19일자 23면) 불량식품 단속한다고 무시로 들이닥치기 때문이란다. 문방구가 가뜩이나 사양길인데, 불량식품 팔지 않나 시도 때도 없이 들볶으니 장사 못 해먹겠다는 푸념이다. 문방구에서 흔히 파는 ‘달고나’, ‘쫀드기’가 4대악이라고? 소가 웃겠다. 4대악은 없애라 하고, 잘 보이지는 않고, 그러니 이처럼 서민들만 들볶인다. 문방구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푸념 소리가 높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은 4대악 맞다. 어떻게든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사회분위기 일신 차원에서 벌이는 쇼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고 본다. 특히 웃분의 진노를 사지 않기 위해, 잘 보이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는 모습도 안쓰럽고, 그 등쌀에 시달리는 애먼 서민들도 딱하다.

어떤 악이든 죄를 저지른 자들을 잡아서 처벌한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이 깊숙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악이 생겨나는 구조와 이를 재생산해내는 폭력문화 자체를 정면으로 다룰 능력이 그래서 필요하다. 국가가 그 총체적 능력을 높이지 않는 한 4대악 ‘척결’은 빈말이고, 거짓말이다. 진짜 악은 이 시간에도 음지에서 더 커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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