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정준성 칼럼]미생지신(尾生之信) 그리고 공약 (空約)

 

2010년 1월, 당시 한나라당 의원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대표인 정몽준 의원 간 논쟁이 세인의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세종시 문제를 놓고서다. 원안대로 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과 수정안을 지지하던 정 대표 간 논쟁이었다.

정몽준 대표는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정 대표는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애인을 기다리다 결국 익사했다는 뜻”이라고 소개하며, 국민과의 약속과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대통령을 빗대어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미생은 진정성이 있고, 애인은 진정성이 없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약속 이행은 곧 신뢰와 직결된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미생지신은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쓸데없는 명목에 목숨 거느냐’와 ‘신의 있는 사람의 본보기’라는 해석이 아직도 분분하지만 시사하는 것은 약속과 믿음은 둘 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귀중한 명제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애당초 하지를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내년 6월까지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민선 5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공약 이행률이 43.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조사한 ‘자치단체장 공약 이행 및 정보 공개 평가’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15일 현재 전국 227개(공석, 재·보궐 선거 지역 등 20곳 제외) 기초단체장들이 선거 때 약속한 1만1천35개 공약 중 이행 완료된 공약은 43.1%인 4천763개라고 한다. 그리고 공약 이행률이 저조한 이유는 공약 남발이 제1의 원인이며, 경기 침체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 같은 재정 압박 등이 그 다음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기도는 평균치보다 약간 웃도는 55.1%로 조사단체 중 3번째(대전 70.5%, 서울 55.2%)였다. 기초단체 중 성남 안양 과천 오산 파주 안성시가 우수단체로, 시흥시가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수치는 별의미를 갖지 못한다. 임기가 1년 정도 남았음을 감안하면 당초 단체장 선거에 나서면서 호언장담한 공약이 절반의 미완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일부 지자체장들은 여전히 ‘말로만 하는 게 공약’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공약을 만들 때 가능성과 필요성을 면밀히 따지지도 않는다. 재정은 생각지도 않고 추진하겠다는 얄팍한 포퓰리즘 공약은 물론이고 득표를 위해 불쑥 내지른 공약도 태반이다. 그래서 개인의 치적을 위해 지역발전과 무관하게 무리하게 추진하다 재정을 파탄내고 지역주민 간 갈등을 증폭시킨 사례를 수없이 겪지 않았는가. 자치단체장이 선심성 행정을 펼치면서 시와 시민들에게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혔다며 용인시민들이 제기하기로 한 경전철 관련 소송가액 1조원대 주민소송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동안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에 대해 감시와 점검의 기능이 많이 강화된 것도 사실이다. 종합적으로 공약 이행을 검증하는 기회를 갖지 못해 어물쩍 넘어가던 과거와 달리 최근 매니페스토실천본부를 비롯 각종 사회단체, 특히 지역주민들조차 활발한 견제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공약의 일방적인 변형이나 왜곡 사례가 많이 사라진 점은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단체장 공약을 지속적으로, 세심하게 평가하고 지역주민들의 감시와 견제가 강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민선 5기인 만큼 이젠 성숙해질 때도 됐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낮은 등급을 받은 지자체들은 물론 상위 평가를 받은 곳도 공약 전반을 다시 검토해 보기 바란다. 공약 가운데 버릴 게 있으면 절차를 밟아 포기해야 한다. 지자체장 개인의 욕심과 명예보다 지역과 지역주민의 발전이 우선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년밖에 남질 않았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