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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치킨게임, 그 결과는 ‘패-패’

 

어떤 사안에 대해 대립하는 두 집단이 있다. 이때 그 사안을 포기하는 한쪽은 상대방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양쪽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경우 가장 나쁜 상황이 벌어진다. 이처럼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으로 치닫는 게임이 바로 치킨게임이다.

이 용어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냉전 시대에 미국과 옛 소련의 극심한 군비 경쟁을 비꼬는 말로 쓰이면서 그동안 국제 정치학 용어로도 자주 등장했다. 최근에 와서는 여러 가지 극단적인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리킬 때 자주 인용된다. 그만큼 보편화 됐다는 얘기다. 특히 노사대립의 양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데도 인용됨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갈 데까지 가보자’식의 대립양상을 표현할 때 으레 이 같은 단어를 쓴다. 여기에는 무한경쟁의 늪에 빠진 대학생들과 취업에 안간힘을 쓰는 실업자들에게도 적용됨은 물론이다.

치킨게임의 유래는 알려진 바와 같이 한밤중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양쪽 모두 목숨을 잃고 자멸하게 된다. 끝없는 대립의 결과는 양쪽 모두 승자 없는 패배만 있을 뿐이라는 교훈도 포함된다.

개그맨 김영철이 번역했다고 해서 한때 서점가에서 잘나갔던 책 ‘치즈는 어디에’의 저자로도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 디팩 맬호트라와 맥스 베이저먼 교수는 ‘협상천재’라는 저서에서 치킨게임이 승부욕으로 ‘패-패’를 부른다는 것을 매우 흥미로운 방법으로 소개해 유명하다. 이들이 제시한 방법은 이렇다. 경험 많은 CEO들을 위한 한 협상 강좌에서 교수가 자신의 100달러짜리 지폐를 걸고 경매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경매는 일반적인 경매와 조금 차이가 있다. 특정 입찰자에 대한 패널티를 부여한 것이다. 즉,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을 부른 입찰자는 100달러를 가질 수 없고, 여기에 더해 자신의 입찰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사장이 50달러를 부르고, B사장이 60달러를 부른 상태에서 경매가 끝났다면 B사장은 100달러를 갖게 돼 40달러를 벌게 되지만, A사장은 자신의 입찰가인 50달러를 B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경쟁의 조건을 강화하기 위해 이 같은 차이를 둔 것이다. 즉, 기존의 경매에서는 경매 물품이 다른 사람에게 낙찰될 경우 낙찰 받지 못한 사람은 이익을 얻지 못할 뿐이지만, 이 경우엔 이익의 포기는 물론 손실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교수의 100달러짜리는 100달러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이 최저 100달러에서 1천 달러 사이에서 낙찰되었다고 한다. 교수는 이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경쟁의 조건이 강화될수록 우리 인간에게는 승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급급한 ‘눈 먼’ 의사결정이 빈번히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승리에 집착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며 입찰가가 100달러를 넘는 순간 명목상의 승자 역시 불필요한 손실을 입은 한낱 패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치킨게임은 ‘패-패’라는 등식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흥미롭다.

교수는 책에서 그 관계가 개인 간이든 국가 간이든 의사결정의 비합리성이 비상식적으로 상승하는 곳에는 항상 대결이 있으며, 그것은 승리에 집착하는 소위 ‘치킨게임’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에 몰입하는 주체들은 지난 숱한 경험들로부터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그것은 치킨게임 자체가 당사자 중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패-패’ 전형이라는 자각을 하는 일이라 충고하고 있다.

요즘 개성공단사태를 비롯한 남북관계가 극도의 대결구도를 보이고 있다. ‘갈 데까지 가보자’식 협상단절도 꽤 오래 됐다.

그런가 하면 최근 개성공단 철수와 관련해 옳으니 그르니 정치권, 경제계, 사회 각계각층 등 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인터넷에서는 벌써 정부가 성급했다, 아니다 등 보수와 진보의 해묵은 논쟁까지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마치 치킨게임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국민들은 걱정을 하며 답답해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진짜 치킨게임’이 되는 것 아닌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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