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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불산 사건과 안전 민주화

 

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를 100% 막는 건 불가능하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도 완전무결하게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칭타칭 세계 초일류 기업에서 똑같은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 불러야 한다.

지난 1일 삼성전자에서 불산 누출 사건이 일어났다. 불과 3개월 전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던 화성사업장 11라인 중앙화학물질공급장치 탱크룸, 바로 그 자리다. 삼성의 설명에 따르면 배관을 철거하기 위해 불산 공급을 멈추고 작업인부를 투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배관에 남아 있던 불산이 흘러나오면서 인부들이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사고 판박이다.

삼성으로서는 그래도 이번엔 3명이 경미한 부상을 당했을 뿐이지 않느냐고 항변하고 싶을 게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삼성이 불산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자백에 다름 아니다. 일각에서는 아예 삼성이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한다. 불산 공급을 완전히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인력을 투입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설령 삼성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불산 공급을 멈추고 나서도 잔류 불산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능력이 글로벌 삼성에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삼성은 치명적인 유해화학물질 취급에 매우 서툴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므로 1차는 불산 누출 사고였는지 몰라도 2차는 불산 누출 사건이라고 해야 맞다.

사실, 사고냐 사건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알고 싶은 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다. 이를 짚어보기 위해 시간을 잠시 되돌려 보자. 첫 사고 당시 삼성은 철통보안, 늑장신고, 허위보고로 대응했다. 공포에 휩싸인 인근 동탄 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삼성공화국’의 권위주의적 방식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물론 1차사고 발생 1개월여가 지난 3월3일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공식으로 사과를 하기는 했다.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권 부회장은 환경안전 업무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뼈저린 교훈”으로 삼고, 지역사회와의 소통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얼마 뒤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유해물질관리를 둘러싼 재계의 로비다. 지난달 23일 국회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유해화학물질 피해가 발생 시 최대 10%까지 과징금 부과, 위반행위 책임 강화, 화학사고 환경평가제 실시 등이 개정안의 골자다.

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기업의 이익, 특히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과 경총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에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일이 터졌다.

그렇잖아도 전국에서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잇따라 인근 주민들이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판이다. 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는 염소가스와 감광액이 누출되는 사고가 6일 사이에 잇따라 발생했다. LG실트론 구미공장에서도 불산, 질산, 초산 등이 섞인 용액이 수십 리터나 새어 나온 데 이어 불산, 질산 혼합 액체 누출이 또 발생했다. 언제 어디서 우리 집 근처 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안전강화법 개정조차 하면 안 된다고?

기업의 이익이 사람의 생명 안전보다 우위에 놓일 수 없다는 건 21세기의 상식이다. 산업기밀이라는 명분으로 해당 기업의 무능과 탐욕을 가려줘서는 안 된다. 불시에 주민의 생명을 앗아갈 위험요소에 대해서는 반드시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주체 간에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문제일지 모르나, ‘안전민주화’는 어떤 이해관계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삶의 원칙이다.

삼성은 화성사업장에서 불산을 계속 써야 한다. 웨이퍼 세척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불산 외에 또 어떤 화학물질이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지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최소한 인근 주민은 이들 물질이 안전하게 관리되는지 알 권리가 있고, 통제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삼성이 진정으로 글로벌한 기업이면 ‘안전민주화’에서도 선두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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