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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파란만장 한자교육 출몰기

 

중국과 일본을 방문할 때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재미는 ‘간판’이다. 의미는 분명히 같지만, 한자 모양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나라의 한자와는 같음과 다름을 명확히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한국, 중국, 일본, 북한은 한자문화권에 속한다. 여기에 대만과 홍콩의 경우도 포함되고 더 나아가 베트남, 싱가포르까지도 확대된다. 한자는 이미 중국에서만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다. 중세시대 이래 공동문자로 우리 고유의 자산이다.

‘한자’와 ‘한문’의 차이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자’가 모여 문장이 된 것을 ‘한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통적 한자의 교수법은 ‘글자’에서 ‘어구’로 학습하고 이를 ‘문장’으로 완성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지금도 외래의 학문을 비롯한 여러 새로운 학술어를 받아들이는 경우, 흔히 두세 자의 한자로 번역한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좀처럼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고유어는 일상어나 감탄어에 국한되고, 한자어는 관념어와 학술어로 확장된다. 단적인 예로 우리말 70% 이상이 한자어다. 따라서 이를 무시하고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글읽기와 글쓰기에 커다란 지장을 가져온다. 이러한 상황에 개방화되고 있는 중국이라는 존재가 부각되면서 한자문화권에서 필수불가결하게 학습해야 할 문자가 바로 한자다.

한자교육은 우리나라의 현대적 교육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많은 혼란을 겪어왔다. 우리나라의 어문 정책은 ‘한글 전용론’과 ‘국한문 혼용론’의 대립 속에서 한글 전용, 한자 혼용, 한자 병기 등의 정책이 교차로 시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자교육은 중등교육에서의 국한문 혼용론과 한글전용론의 첨예한 인식의 차이로 그 부침이 두드러졌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초등학교의 정규 교과목에서 제외된 한자교육이다. 아직까지 사회적 합의가 되지 못했기에 초등학생 중심의 한자교육을 학습지 회사가 담당하는 실정이며, 사교육 학습 시장을 형성한다.

기성세대 중에서도 한자 사용의 능력 차이가 크다. 중등교육 기간이 어느 교육과정에 속하느냐에 따라 연령층별로 한자 습득의 여부가 좌우되는 셈이다. 이렇게 비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거쳐 교육용 기초한자 1천800자를 이수하지 못해 전공 책은 물론 심지어 자기 부모이름조차 못 쓰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러한 어문 정책과는 달리 한자·한문 능력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다.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심각한 ‘한자 학습의 지체’ 현상을 기사로 확인된다. 공교육에서 한문과목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과는 달리 사교육시장에서는 한자급수 자격시험의 본격화는 1998년이었다. 기업체에서 국가공인 한자급수자격 소지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 한자교육에 대한 관심은 한자능력검정시험의 급수제가 공헌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한자 급수제도는 급수마다 배정한자, 시험유형을 단계별로 차이를 두어 한자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취업 준비생에게 여러 가지의 이유로 한자급수가 이른바 ‘스펙’ 항목으로만 인지되고 있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 취업에 필요해서 한자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지, 한자 학습을 통해서 전공분야의 학문적 접근성에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에는 한자 학습 시장도 축소되어, 우려할 정도로 한자 급수 시험의 응시생도 줄어들고 있다.

한자해독능력은 일상생활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문영역에 있어 학문적 수월성을 강화하는 데도 중요한 언어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에 교양교육에 배제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을 띠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등교육기관의 한자교육은 사교육 시장에 내맡겨졌던 학습자의 일부라도 제도권 교육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또 일정한 학문적 수준을 갖춘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순기능을 지닌다.

결국 한자교육은 한자에 담긴 다양한 기능을 고려하여 인문학적 기초 소양을 측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가야 한다. 기초 한자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교양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놓쳐서 안 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초등교육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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