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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사람 잡는 역사 왜곡 진드기

 

민주화시키다? 지난주 어느 여성 아이돌 멤버가 사용해서 논란이 된 표현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억압 또는 폭행하거나 언어폭력을 하는 행위”라는 뜻이란다. 기가 막힌다. 어떻게 ‘민주화’의 뜻이 이렇게 정반대로 뒤집힐 수 있나. 일 뭐라나 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쓰는 ‘언어’다. 김치년, 운지, 삼일한, 통수, 홍어….(<노컷뉴스> 5월18일, “‘민주화’에서 ‘운지’까지…십대 파고드는 ‘일베語’”)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른다. 소설의 무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유라시아에서는 신어(Newspeak)라는 새로운 언어가 쓰인다. “신어의 창안 목적은 신봉자들에게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 나라의 슬로건은 이렇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 섬뜩한 파시스트 체제에서 쓰이는 신어의 특징은 약어(略語)가 많고, 반어적이고, 이중의미를 띤다는 거다. 전쟁을 관장하는 정부부처는 평화부(줄여서 평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부처는 애정부(애부), 역사를 체계적으로 왜곡하는 곳은 진리부(진부)라고 부른다. 강제노동수용소는 쾌락수용소(joycamp)다. ‘오리말(duckspeak)’은 오리처럼 꽥꽥 거린다는 뜻인데, 적에게 사용하면 욕설이고, 동지에게 쓰면 칭찬이 된다. 자신들 주장을 일방적으로 꽥꽥대는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오웰은 1948년에 <1984>를 썼다. 신통하다. 지금부터 65년 전에 이미 오웰은 대한민국 ‘일뭐’ 사이트에서 사용될 ‘신어’들을 내다보고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오웰은 나치즘과 스탈린체제의 본질을 꿰뚫어보았던 것이고, 이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뿐이다. 그런데, 오싹하게도 21세기 코리아에서 그 전체주의 언어가 횡행하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지난주 제주도에서 노인 한 분이 진드기가 퍼뜨린 바이러스 감염으로 돌아가시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유사한 증세를 보인 환자 다섯 명 가운데 한 분이다. 진드기를 매개로 한 바이러스는 계속 변종이 생기는 중이라고 한다. 미처 백신을 만들어낼 새도 없는 모양이다. ‘일뭐’라는 곳에서 독버섯처럼 번져나가는 저 증오에 찬 언어들도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싶다.

관련해서, 종편 두 곳에서 지난주 5·18 항쟁 과정에 북한군이 대거 침투 개입했다는 방송을 잇따라 내보낸 일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미 검증이 끝난 역사까지도 이렇게 왜곡하는 의도는? 빅 브라더의 나라에 ‘2분간의 증오’란 제도가 있듯, 민주항쟁의 역사가 껄끄러운 자들에겐 ‘증오주간’이 존재하는 걸까?

오웰의 <1984>로 되돌아가 보자. 빅 브라더의 당은 이렇게 주장한다. “만일 사람들이 당의 거짓말을 믿는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 또한 빅 브라더의 슬로건이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직업 역시 당의 지시에 따라 역사 기록을 조작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는 ‘이중사고’라는 빅 브라더 나라 특유의 사고방식이 강요된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진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묘하게 꾸민 거짓말을 하는 것, 철회된 두 가지 견해를 동시에 지지하고 서로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하여 논리에 맞서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필요한 순간에만 기억에 떠올렸다가 다시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다 똑같은 과정을 적용하는 것….” 역사왜곡에 적용하는 ‘기억의 정치학’ 이론이 나오기 훨씬 전에 오웰은 직감적으로 파시스트들의 ‘이중사고’ 역사왜곡을 갈파했다.

엊그제 5·18 기념식이 반쪽으로 치러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마느냐가 쟁점이었다. 5·18을 매도하기에 바쁜 ‘일뭐’ 무리들, 사실도 아닌 북한 연계설을 퍼뜨리는 종편들, 노래 한 곡에 애들 경기 일으키듯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국가보훈처. 이들은 혹시 같은 진드기에게 물렸으나 증세만 다른 건 아닐까? 역사 왜곡 진드기가 계속 사람 잡게 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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