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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다시 칙궁을 읽으며

 

지난 2주간에는 방송과 신문에 보고 읽을 기사가 넘쳐 났다. 해외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공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고위 공직자가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벌인 것에 온 나라가 분개했다. 밥자리와 술자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거들면서 안주거리로 삼았다. 하지만 곰곰이 뒤돌아보면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5천만 우리 국민의 얘기였다. 나 스스로의 과거를 보는 듯했다. 과거 자신의 술버릇과 몸가짐과 행동거지에 대하여, 그리고 공직자 자세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를 준 점 그 분께 감사했다.

먼저, 술 마시는 것의 위태로움에 관하여 이미 900여 년 전에 경고했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술 마시는 것을 맑은 취미로 잘못 생각하는데, 술 마시는 버릇이 오래가면 게걸스러운 미치광이가 되어 끊으려 해도 되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마시면 주정부리는 자가 있고, 마시면 말 많은 자가 있으며, 마시면 잠자는 자도 있는데, 주정만 부리지 않으면 폐단이 없는 줄로 여긴다. 그러나 잔소리와 군소리는 아전이 괴로이 여길 것이요, 깊이 잠들어 오래 누워 있으면 백성이 원망할 것이다. 어찌 미친 듯 소리 지르고 어지러이 떠들며 넘치는 형벌과 지나친 곤장질만이 정사에 해가 된다고 하겠는가? 수령이 된 자는 술을 끊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육구연의 말이다. 다산 선생께서 『목민심서』의 ‘칙궁(飭躬)’ 편에 적어 놓으셨다. 900여 년 전 중국의 재야 학자가 내다본 통찰이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본인의 주량을 지키고, 주위에 폐 끼치지 않으면서 술 마시지 못하다면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할 것이며, 술을 강권하는 한국사회의 음주풍토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 일상생활에서의 바른 몸가짐에 대해 반추해 보았다. “밝기 전에 일어나서 촛불을 밝히고 세수하며 옷을 단정히 입고 띠를 두른 후 조용히 앉아서 정신을 함양한다. 얼마쯤 있다가 생각을 풀어내어 오늘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정한다. 제일 먼저 무슨 공문을 처리하고, 다음에는 무슨 명령을 내릴 것인가를 마음속에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제일 먼저 할 일을 잘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고, 다음 할 일을 잘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되, 사욕을 끊어버리고 하나같이 천리(天理)를 따르도록 힘써야 한다.” 생활은 부지런해야 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업무를 미리 준비하고, 이치에 맞게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다산 선생의 말씀이다. 비단 공직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국민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격언으로, 여러 번 다시 읽어도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다. 지극정성으로 공무를 처리하고 부지런하게 웃분을 모셨다면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직자의 바른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공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과거를 돌아보면 부끄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부끄러움은 모두 스스로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 시절에 아래와 같은 다산 선생의 말씀을 한 번 더 되새겼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들이 생겼던 것이다. “벼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니, 이로써 허물을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 선생께서 『치현결(治縣訣)』의 구절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낮춰야 한다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다.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항상 두려워하는 낮은 자세로 임해야 소위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공직자들이 이번 사태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나아가, 모든 국민들 역시 이번 일로부터 많이 배웠을 것이다.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를 고쳐나가야 한다. 평소에 부지런하고 바른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 항상 두려워하고 삼가는 낮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 공직자뿐만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깨우치지 않는다면, 나쁜 역사는 항상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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