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5월이 되면 어김없이 가장 비극적인 우리의 현대사,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시 만나게 된다. 체제 순응과 저항의 과정이 역사의 가장 큰 동력으로 두 축을 이루고 있다면 광주민주화운동은 분명 큰 방점으로 기록될 저항의 역사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념식에서 부를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과 합창의 간극 사이에서 시비하느라 반쪽짜리 기념식으로 치러지고 말았다. 보훈처는 정부의 모든 기념행사에서는 공식 기념 노래만 제창 형식으로 부르는데, 현재 5·18 행사는 공식 기념 노래가 없기 때문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또 “최근 노래의 상징성이 변했기 때문”이라던가 “노래를 부를 때 주먹을 쥐고 흔드는 모습이 5·18의 의미를 폭력적으로 윤색시킬 수 있다”는 이유들도 등장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은 사라지고 제창이니 합창이니 하는 궁색한 소리들만 남았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동명의 뮤지컬만큼이나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과 반응을 이끌어냈다. 정치 체제가 요동치던 격랑의 시기, 도탄에 빠진 민중이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의 깃발을 올리며 비장하게 부르는 마지막 장면의 노래 ‘사람들의 노래가 들리는가, 성난 군중의 노래가…’는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는 마르세이유 군대의 노래라는 뜻으로 1792년 군가로 처음 작곡된 이후 혁명군들이 부르며 유럽 구석구석에 혁명의 이상이 울려 퍼지게 했다. 이 노래는 왕정복고 시기에는 금지가 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1830년 7월 혁명 때 파리의 바리케이드에서 되살아났고, 제3공화국 시절인 1879년 마침내 처음 작곡된 지 87년 만에 프랑스의 국가로 재탄생했다. 가사 중에는 전제군주에 맞서는 서슬 퍼런 저항의 내용이 선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저항의 역사를 기념하는 프랑스 국가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저항은 대중들의 삶과 피를 담보로 하여 정서의 체에 걸러지며 마침내 생명을 얻게 된다.

저항의 노래는 숨 가쁜 역사의 고비마다 생명을 불어 넣는 동력의 역할을 해왔다. 1969년 8월 15일,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리고 40만여명이 모여들었다. 평화와 반전을 외치는 젊은이들. 첫 무대에 선 리치 헤이븐스는 흑인영가 ‘Motherless child’를 즉흥적으로 개작한 ‘프리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저항문화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반전운동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의 포크 가수 존 바에즈가 1963년에 발표한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09년 타계한 남미 민중의 어머니로 불리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삶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과 망명으로 점철되었지만, 400년 넘도록 식민지 노예생활을 감내해 온 라틴아메리카 인디오의 애환을 고스란히 노래에 담아내며 그의 인생 자체로 한 편의 현대사가 되었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에는 저항의 노래였다. 독립군들은 광야를 달리며 아리랑을 개사해 군가로 불렀고, 나운규는 고향에서 들었던 민요 아리랑을 소재로 삼아 영화를 만들었다. 1926년에 상영된 영화 ‘아리랑’의 멜로디가 바로 우리가 부르는 ‘본조 아리랑’이며 온 민족의 항일 노래가 되었다.

노래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접근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노래 속에는 인류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에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인간의 삶과 늘 함께했다는 점에서 노래는 역사시대 이전의 것, 인류문화의 화석으로 보는 관점이 타당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래는 생명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과 지역에 따라 노랫말과 곡조가 첨삭가감 되면서 처음의 형태에 머물지 않고 새롭게 변화하고 생성되며 진화하는 유기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노래’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과 사회, 체제에 순응하거나 또는 저항하는 인간 세상의 모습과 시대정신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니 노래는 단순히 노래 하나가 아니다. 저항의 노래에는 민심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는 훌륭한 시금석인 것이다. 순응에 익숙한 기득권층과 정치인들이 귀에 거슬리고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저항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질 것 같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