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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기

 

요즈음 중소기업에서는 생태계 이야기를 자주 한다. 벤처 생태계, 중소기업 생태계, 창업 생태계라고 부른다. 왜 ‘생태계’라는 단어를 썼을까? 소기업, 중기업, 대기업이 공존하는 산업계가 마치 크고 작은 나무가 어우러진 생태계 같아서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경제학자 마샬은 중소기업을 포함한 산업 생태계를 숲에 비유하였다. 숲에는 작은 나무, 큰 나무, 오래된 고목 등 수종이 모여 커다란 생태계를 만든다. 나무 하나하나가 독립적이지만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다. 씨가 떨어져 어린 나무가 되고, 어린 나무가 커서 큰 나무가 되고, 고목이 되면 퇴출된다.

나무가 생성하고 소멸하며 숲의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처럼, 기업도 창업하고 성장하고 퇴출하는 과정을 밟는다. 창업을 통해 새로운 기업이 들어오지 않으면 생동감이 떨어지고 생태계가 마를 것이다. 큰 나무만 있으면 하위 생태계가 없어 숲이 허약해지고, 혼자만 살겠다고 하늘을 뒤덮고 있으면 그 밑에는 햇빛 한줄기 들지 않아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한다. 같이 살아야 더욱 건강한 숲이 되며, 이것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동반성장하는 생태계이다.

3不 경기가 열리는 운동장

정부로부터 기술개발자금을 지원 받아 어렵사리 성능이 우수한 의료용품 개발에 성공한 중소기업을 지난 2월에 방문한 적이 있다. 사장님은 그간의 개발 과정을 얘기하며 매우 기뻐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하면 뭐합니까? 대기업에 다 빼앗기는데.” 이유인즉, 제약업체 대기업이 상담한다는 명분으로 두 달을 끌더니 납품상담은 미루고 기술을 넘기라고 다그친단다. 다른 대기업은 더 노골적이어서 아예 상담을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제 대기업 납품 미련을 버리고 독자 판매를 위해 유통망을 알아보고 있다면서 이런 일이 흔하냐고 묻기에, 이제부터 시작이고 앞으로 더 험한 길이 기다린다고 했다. 동영상 인식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도,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어떤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도, 대기업이 기술을 넘기라고 압박한다며 찾아왔다. 그러다 납품줄 끊기고 대출까지 막힌 중소기업도 있다.

축구를 하는 운동장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 기울어진 쪽은 아무리 힘껏 공을 차도 멀리 나가지 못한다. 우리 중소기업의 처지다. 이러한 불공정 거래, 불균형 시장, 불합리한 제도를 ‘중소기업 3不’이라 한다. 이 관계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불공정 거래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불균형 시장은 ‘골목상권 싹쓸이’, 불합리한 제도는 ‘인력 빼가기, 기술 탈취’라 부른다. 중소기업 생태계에 이 3不이 여전하니 경기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3不 고치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현장을 다니다 보면 3不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웅덩이도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고 있다. 손톱 밑 가시는 정부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소기업을 불편하게 하는 법률·규정·시책·고시를 운영하는 것인데, 숨어있는 웅덩이는 대기업이나 다른 중소기업, 공기업과의 관계에서 드러나지 않게 중소기업을 골병들게 하는 나쁜 함정들이다.

숨어있는 웅덩이도 메워야

노비문서 같은 계약에 편의점 사장이 목을 매고, 밀어내기에 질린 대리점 주인이 본사를 고발하고, 품질 관리를 하는 척하면서 원가정보 빼가고, 구매상담하면서 기술 사양부터 디스크에 담아 제출토록 하고, 품질검사와 판촉에 드는 비용을 납품기업에 떠넘기고, 공청회에 나가 바른말을 한 중소기업 사장은 불러다 혼내고, 아직도 5개월 어음을 돌리고 있다.

중소기업인들은 정부지원보다 중요한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고, 곳곳에 숨어있는 웅덩이를 메워주는 일이라 한다. 건강한 생태계에서 좋은 나무가 쑥쑥 자라는 것처럼, 중소기업이 평평한 운동장에서 잘 뛰어 놀고, 넘어지면 일어설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면 알아서 잘 클 것이다. 이제 대기업이 스스로 정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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