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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정치권은 열공(熱功)중

 

정치권이 독일에 대해 열공(熱功)중이다. 여·야 모두 경쟁이라도 하듯 연구모임도 만들었다. 활동도 활발하다. 이름 하여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 ‘혁신과 정의의나라포럼’. 여권은 남경필(수원팔달) 의원이, 야권에서는 원혜영(부천 오정) 의원이 모임의 투톱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4월 11일 비주류의원 20여명 규모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60여명이 매주 목요일 모여 전문가를 초청, 독일의 권력 구조, 통일 과정, 중소기업의 경쟁력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야권은 참여폭이 조금 넓다. 여권보다 늦은 오늘(29일) 출범예정이지만 민주당을 비롯 진보정의당·통합진보당 의원까지 아우른다. 민주당 74명과 통합진보당 3명, 진보정의당 3명 등 무려 81명의 현역 의원이 참여한다. 야당 의원의 절반 이상이 독일 학습에 매진할 예정인 셈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모여 독일의 경제 민주화, 지방자치, 환경·노동정책 등을 공부할 계획이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정치권의 많은 의원들이 스웨덴을 우리나라 미래의 모델로 삼고 연구 했었다. 2010년, 당시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그려 가지고 오겠다며 스웨덴으로 떠났을 정도였다. 지금도 일부 진보정당 의원들은 스웨덴 배우기를 진행 중이다.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무상의료, 생계보장 수준의 기초연금, 실업급여 등 잘 정비된 각종 사회적 안전망, 그리고 노동시장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적극적 노동정책 등 스웨덴이 세계에서 가장 잘 정비된 보편적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특히 척박한 자원,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좁은 국내시장으로 인한 높은 무역의존도 등 우리나라가 처한 조건들과 매우 흡사한 것도 그들을 연구에 매달리게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독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의 로드맵을 제시한 사람은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김택환 교수라는 것이 정치권의 평이다. 저널리스트이기도한 그는 지난해 발간된 자신의 저서 <넥스트 코리아 우리들이 꿈꾸는 나라>를 통해 한국의 다음 국가 모델로서 독일이 그 대안임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난제에 대한 해법을 독일의 연구를 통해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이 왜 강하고, 독일인이 왜 행복한지 비결도 디테일하게 담았다. 당시 이 책은 정치권에 필독서가 될 만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 일부 의원들이 국가 룰 모델로서 독일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관심이 스웨덴에서 독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왜 지금 독일을 열공(熱功)하는가. 참여하고 있는 여·야 의원들은 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독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새 국가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목표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기치로 성장에만 매달려온 기존 모델로는 양극화 등 당면한 사회문제를 풀 수 없다는 위기감이 정치권을 공부하게 만든 배경이라고 이구동성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설명으로만 보면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순수한 열정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차기 또는 차차기 정권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는 독일 열공이 순수한 국가의 미래 걱정 때문인지, 정치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것인지 애매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지사는 올해 초 독일로 연수를 떠났다. 일부 정치인들 또한 독일로 장기 연수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1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으로 연수를 간 손 고문은 한발 더 나아가 오는 7월 초부터 20여 일간 대학생·지지자 등 700여명과 함께 유럽 전역을 돌며 집단 배낭여행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모두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치권에 부는 선진국 배우기 열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통 모델인 미국이 있었고, 독일 이전에는 앞서 지적한대로 스웨덴을 비롯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들이 롤 모델로 떠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시대 상황의 변화 때문인지 유행처럼 번졌다가 일시에 사라지곤 했다. 이번 독일 열공은 이와 다르기를 바란다. 또 과거처럼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길 기대한다. 성장 한계에 부딪친 우리나라의 미래를 찾기 위해선 정치인들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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