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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누가 역사교육을 이념으로 물들이나

 

“뉴 라이트가 교과서를 뒤집으려 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다.” 뉴 라이트를 공격하는 측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다. 뉴 라이트 진영의 원로 역사학자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의 말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토론회 개회사에서 뉴 라이트가 새로운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1980~1990년대의 “교과서 쿠데타”를 바로잡으려 한다고 밝혔다. 저 토론회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교 한국사(교학사) 검정 통과에 즈음하여 개최된 자리다.

뉴 라이트 논법에 따르면 기존의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나 검정 한국사 교과서들은 “쿠데타” 세력의 작품이 된다. 북한에 동조하는 역사학자 무리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 농단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냐 아니냐는 매우 중요하다. 기존의 교과서를 집필하는 데 참여한 역사 교수와 교사, 이들이 참고한 수많은 역사학 논문과 저서의 필자들, 이들 교과서의 내용이 옳다고 믿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전국의 역사 교사들, 학원 사탐 강사들, 참고서 집필자들의 처벌이 걸린 무시무시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 많은 학자와 선생들이 역사 왜곡 “쿠데타”에 가담하거나 동조한 걸까?

“교과서 쿠데타” 근거 확실해야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은 다양하게 마련이다. 특정 사관(史觀)에 역사 독점권을 주는 일은 전체주의 체제에서도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국사편찬위원회가 한국현대사학회의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기로 한 것 자체는 시비를 걸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똑 같은 논리로 뉴 라이트 계열 역시 다른 관점에서 쓰인 교과서를 인정하는 게 순리다. 선택은 사상의 자유시장에 맡기면 된다. 마케팅 차원에서 상대를 공격하고 싶다는 유혹이 크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상대를 거꾸러뜨리려면 그만큼 근거가 튼튼해야 한다. 상대를 국가보안법 위반 내지 국기문란 사범으로 몰려면 매우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상대방의 역사적 관점이 오류라는 것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완벽하게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념을 앞세워 상대를 공격하는 건 정치선동이나 이념투쟁이지 역사논쟁은 아니다. 정치선동, 이념투쟁을 위해 집필된 역사 교과서를 다양성이라는 명분 때문에 검정 승인하는 일은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현대사학회의 교과서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 식민지배가 우리의 근대화 토대를 제공했다든가, 김구 선생과 김좌진 장군은 테러리스트라든가, 위안부는 성매매업자의 소행이라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보도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한국현대사학회의 핵심 멤버 61명 가운데 한국사 전공자는 단 8명이고, 동서양사 학자를 포함해도 역사학자가 20명도 안 된다는 분석 보도도 잘못 된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처럼 소수의 역사학자가 내놓은 관점을 다양성이라고 인정하기도 어렵거니와 이들이 과연 정확한 사실(史實)에 기초해 서술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중고교 역사교육은 역사학계의 치열한 해석 논쟁을 충분히 거친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맞다. 중고교 과정에서는 사관이나 역사학 방법론을 다루지 않고 다룰 필요도 없으므로, 해석보다는 사실에 충실한 역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기존 교과서는 이미 치열한 해석 논쟁을 거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확고한 근거도 없이 막연하게 종북의 소산이라고 주장하는 게 훨씬 더 가치편향적인 태도다.

사실부터 제대로 가르치자

한국현대사학회는 2011년 결성되자마자 중학교 교과서의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문제로 한바탕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번에도 우리 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또 한 번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오는 8월 최종 검정 승인이 이뤄지기까지 무더운 여름 날씨보다 더 뜨겁고 끈적끈적한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번 공방은 우리가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고는 있는지,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일본 우익의 역사관과 한국 뉴 라이트의 역사관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등을 숙고할 좋은 기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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