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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宗家). 사전적으로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 가문의 전통과 명예, 그리고 효 정신을 오롯이 지켜내는 곳으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집을 말한다. 현재 경기도에는 안향(安珦), 황희(黃喜), 이이(李珥) 등 많은 인물의 종가가 남아있다. 하지만 종가의 전통적인 명맥을 그대로 이어오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광명시 소하동에 선조의 충효정신을 받드는 종가가 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청백리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선생과 직계 후손들의 유적·유물이 보존되어 있는 이곳은, 이원익 선생의 13대 종부 함금자(73·여)씨 부부의 터전이다. 오리 선생을 기리고 종가를 보존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결국 이들 부부는 2003년 자신들의 종가를 충현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함금자 관장을 만나 충현박물관을 운영하게 된 계기와 소망 등을 들어봤다.

대표적인 청백리 재상 오리 이원익과 충현박물관

오리 이원익은 조선 태종(太宗)의 열두 번째 아들 익령군(益寧君)의 4대손으로,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 3대에 걸쳐 여섯 차례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이원익 선생은 투철한 책임감과 애민(愛民)정신으로 그의 사후, 종묘에 있는 인조의 묘정(廟庭)에 함께 배향(配享)될 만큼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 재상으로 손꼽힌다.

연간 8천여명이 방문하고 있는 충현박물관은 그러한 이원익 선생의 문중을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국내 유일의 조선시대 종가박물관’이다. 그렇기에 이곳에는 이원익 선생의 영정과 친필, 그 후손들이 남긴 고문서와 목가구뿐만 아니라 임금에게 하사받은 사택 관감당(觀感堂), 사당 오리영우(梧里影宇) 등 800여점의 유적지와 유물들이 남아있다.

충현박물관 함금자 관장은 이곳의 13대 종부다. 그가 종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박물관으로 운영하게 된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다른 박물관처럼 유물 수집을 해서 개관한 것이 아니라 선대로부터 내려온 유물과 오리 이원익 선조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종가를 보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종가가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박물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리·관리하는 데 필요한 지원과 인력지원을 받고 있지만, 운영비를 지원받지 못해 함 관장은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그는 ‘이게 진짜 언제까지 잘 지속될는지’ ‘하다 못하면 국가에서 운영해 주십사’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단다.

함 관장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것은 박물관만이 아니다. 2003년 2월 박물관 개관에 앞서 충현문화재단을 설립, 운영해온 이들은 수익을 목적으로 사업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재단은 사업을 해서 수입을 창출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거예요. 이것은 이제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국가재산, 공익재산으로 환원을 시켜서 계속 보존될 수 있는 재산으로 만든 거죠. 그거를 위해 재단에서 목적사업으로 박물관을 하는 거지, 무슨 목적이 있어서 재단을 설립한 게 아니에요.”

 


박물관 운영을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한 함 관장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20세가 넘어 전주이씨 문중에 시집을 온 후, 4년 동안 종가에서 살며 집안의 역사와 내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유물들을 하나하나 보관·보존했던 함금자 관장은,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종가에서의 삶을 중단하고 서울로 이사하게 됐을 때에도 그 유물들을 가지고 이사를 다녔을 정도로 소중히 여겼다.

남편인 13대 종손 이승규 박사가 은퇴하자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다시 이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그는 종택(宗宅) 옆에 노년을 보낼 집을 지었다. 하지만, 현재 그 집은 박물관의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유적지는 복원돼서 다행이건만 소실된 유물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는 함 관장은 박물관을 개관하고 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을 정도로 박물관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

개관 5주년 때까지 유물들을 연구·정리·전시하며 노력했다는 그는 “우리 박물관은 종택과 사당, 시호가 있는 선조의 영정, 선조들의 묘 등 종가박물관으로서 갖춰야 할 조건들을 다 가지고 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박물관이 다양한 가르침의 장이 될 수 있기를…

함 관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겸손’이다. 당시 여성들은 고등교육 받기가 힘든 시절이었기에, 그는 ‘대학까지 나온 여자가…’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예전부터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썼고, 겸손함을 중요시했다. 그 덕에 지인들은 늘 함 관장의 겸손함을 칭찬한다.

현대 문화에서 종가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을 유지하길 바라는 그에게도 작은 바람이 있다. 광명시가 이 박물관을 이용해서 공무원에게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일깨우게 하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인성교육의 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이원익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에 충현박물관은 현대인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줄 박물관으로 거듭 나고 있다.

광명문화원은 이러한 이원익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5월 오리문화제를 엶으로써 이원익 선생을 알리고 박물관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함금자 관장은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재단과 박물관을 설립한 것은 국가의 문화유산을 계속 전승·보존하기 위한 것이지, 개인의 욕심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종가문화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함금자 관장의 소망을 인터뷰 말미에 전해들을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현대에서 종가를 ‘박물관화’ 하는 것만이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외에도 많은 종가 박물관이 생겼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박물관을 운영하며 정신문화를 소재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선조들의 정신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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