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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걷는 길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 사회에 최근 몇 년간 걷기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걷는 길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걷기보다 등산을 즐긴다. 산이 많은 한국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데 익숙한 한국인의 정서에 맞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들이 세운 신기록들을 듣고 있노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등산을 즐기던 한국인들이 걷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는 한국인들의 삶의 태도가 변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된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인은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으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 왔다. 그 결과, 한국은 산업화를 19년 만에 달성하였고, 한국의 경제 규모와 국민의 경제생활 수준을 나타내주는 국내총생산이 2만5천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은 경제적 성취를 이룬 만큼 행복해하지도 않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경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긍정적 정서’가 높아야 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삶의 만족도’도 동시에 높아야 한다. 이제 한국인들은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오늘이 아니라,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기 시작한 듯하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느리게 주변을 둘러보며 사는 것도 행복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듯하다. 그래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은 혼자 걸을 때 많은 생각을 하며 걷는다. 혼자 걷다 보면 누구나 철학가가 된다. 둘이 걸으면 친구가 되고, 셋 이상이 걸으면 그 순간 공동체가 하나 만들어진다.

걷는 길은 올레길처럼 민간단체가 만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만들고 있다. 독립된 개별 주체가 전국에서 많은 길들을 만들다보니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서로 다른 주체가 만든 길의 연결 문제, 길을 표시하는 디자인 통일 문제, 전국적으로 통일된 길 안내 체계 수립하는 문제 등이다.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구간 별로 조성 주체가 다른 이 길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이다.

유럽은 평지가 많다. 고속철도를 타고 2시간을 가도 산은 나타나지 않고 넓은 평원으로 이어지는 곳이 많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등산보다 걷는 일을 즐긴다. 유럽의 걷는 길 하면 많은 이들은 스페인의 산타아고 가는 길을 떠올리지만 프랑스의 걷는 길도 우리가 관심 가질 만하다. 프랑스인들은 ‘오랫동안 걷는다’, ‘오랫동안 산책한다’는 뜻의 랑도네를 즐긴다. 프랑스인들이 전국적인 규모의 걷기 협회인 랑도네 협회를 만든 것이 1947년이니 걷는 길에 대한 관심은 우리보다 60여년 앞선 셈이다. 프랑스에는 걷는 길이 18만km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3천200여개의 동호회가 조직되어 활동 중이다. 랑도네 협회가 하는 일은 걷는 길을 찾아서 코스로 만들고, 걷는 길을 유지·관리하고, 방향·거리·구간을 표시하여 길을 걷는 이들이 편안하게 걷도록 해준다. 환경 보존 차원에서 오솔길을 보존한다. 전국적인 안내도를 만들고, 도보여행 가이드를 만들어 판매하여 협회 운영 경비도 마련하고, 랑도네하는 프랑스인들이 어려움 없이 길을 찾게 해준다. 그리고 지도자를 양성하고, 걷기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걷기 동호회와 학교가 활용토록 하고 있다. 랑도네 협회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제 우리도 걷는 길을 통일해 관리할 조직이 필요하다.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길을 안내하는 디자인도 통일해야 하고, 통일된 안내 체계도 필요하다. 얼마 전 올레길에서 사고가 있었다. 걷는 길의 안전도에 등급을 매길 필요가 있다. 여성이 혼자 걸어도 좋은 길에서 반드시 여러 명이 같이 걸어야 안전한 길에 이르기까지. 길의 난이도도 주부가 아이들과 걸어도 좋은 길에서부터 전문적인 도보 여행가만이 걸을 수 있는 길까지 등급을 나누어주는 일도 이제 해야 한다. 길을 관리하는 일도 전문적인 영역에 속한다. 걷는 길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 경기도가 옛길 관리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한다. 이 조례가 한국사회의 걷는 길을 확산시키고 길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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