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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억지는 억지를 낳고

 

‘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당사자 간의 분쟁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힘으로 갈등 표출을 막는 건 미봉에 불과할 뿐 진정한 평화라 할 수 없다. 10·4선언은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가자는 남북 양자 합의문서다.

정치적·이념적 입장에 따라 10·4선언을 입맛대로 해석해서, 그 가치를 우러르건, 폄하하건 자유다. 하지만 이전 정권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10·4선언 문안 어디에도 NLL을 포기한다는 구절이 없다는 점까지 부인해서는 곤란하다. 당시의 대통령이 아무리 미워도 엄연한 사실마저 왜곡하지는 말자.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담과정에서 NLL을 포기한다고 말했다는 주장 자체가 의심스럽다. 회담의 결과가 공동선언일진대, 남쪽 대통령이 굳이 포기하겠다고 밝혔는데도 북쪽 국방위원장이 말렸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NLL 없애기를 갈망하던 북한이 도리어 공동선언에서는 평화수역 논의를 시작하자고 문안의 수위를 낮췄다? 해괴한 추론이다.

NLL 포기? 해괴한 추론

밀고 당기기 회담 과정에서 오고간 대화는 협상전략에 따른 발언으로 간주하는 게 상식이다. 상대를 떠보기 위해 반어(反語)를 쓸 수도 있고,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엉뚱한 화제를 등장시킬 수도 있다. 추잡한 게 정치판이라지만, 미운 대통령이라고 앞뒤 잘라내서 덤터기를 씌우는 건 역사왜곡이다. 그 화는 조만간 자신들에게 되돌아오게 돼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정치개입 국정조사를 NLL발언 국정조사로 맞세우는 것도 억지다. 두 사건은 전혀 격이 다른 문제다. 굳이 격을 맞추자면, 댓글 선거개입은 전 정부 국정원의 국기문란, NLL 대화록 파동은 현 정부 국정원의 정치개입 시도이므로 여기에 초점을 맞춰 함께 국정조사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억지 부리지 말고, 이미 합의한 원세훈 씨의 국기문란 행위 국정조사부터 하는 게 오천만의 상식에 부합한다.

원씨 지시를 따른 국정원 심리전단이 대선에 미미한 영향밖에 미치지 못했다는 주장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핵심은 대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가 아니라, 국내정치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되는 국정원이 단 한 건이라도 그런 행위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이기 때문이다. ‘87년 체제’ 성립 이래 어렵사리 진전시켜온 국정원의 정치중립을 무너뜨린 혐의가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이런 억지를 부리니 기가 막힌다.

새누리당은 다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아니면 한 번 시작했더니 시야가 좁아져서 점점 더 억지의 수렁에 빠진 걸까? 후자라면 참 큰일이다. 이런 철없는 국회의원들을 뭘 믿고….

위험해 보이는 과잉충성

전자라면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왜 뻔히 알면서도 코흘리개 수준의 억지를 부릴까? 자신들 세력의 막강한 정치적·사회적 힘을 믿기 때문에? 국정조사가 시작되면 정말 국민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커넥션이 드러날까 봐? 국정조사가 지난 대선 불복운동으로 번질까 봐? 그것도 아니면, 그걸 걱정할지 모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심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불현듯 ‘심기경호’라는 말이 떠오른다. ‘심기경호’는 10·26 당시 경호실장이던 차지철이 만들어낸 용어다. ‘각하’의 심기까지 미리 살펴서 편안하게 해드리는 게 진정한 경호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심기경호’의 종말은 굳이 언급하지 말자.)

새누리당이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은 대다수 국민들은 국정원이 바로서기를 원하지, 선거 결과가 뒤집히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대선에서 패배한 문재인 의원이 이미 명확히 한 바 있다. 댓글사건이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는 이제 와서 누구도 딱 부러지게 판정할 수 없다.

억지가 억지를 낳으면서 상황이 무척 복잡해졌다. 만약 판을 어지럽게 만들어 국민을 헷갈리게 하는 게 청와대와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국정원 사건은 민주주의의 본질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아무리 ‘물타기’를 한다 해도 이대로 유야무야될 일이 결코 아니다. 위험한 도박을 계속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순리대로 풀어갈 것인가. 결단은 빠를 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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