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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자 한국전통자수 연구가

 

 

 

역사를 주제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궁궐 여인들과 양반가 규수들이 수 놓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계승·발전된 우리의 자수문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궁수(宮繡:궁중에서 수방나인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와 민수(民繡: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수)로 구분되어 궁중에서는 임금과 세자의 곤룡포, 황후와 태자비의 활옷 등에 놓여지고, 민가에서는 여인들의 혼수품이나 규방소품 등에 활용되어왔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진행된 기계의 발달로 인해 자수문화는 우리의 무관심속에 잊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한국전통자수를 연구하는 사람은 수도권에서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작업도 더디고 오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수 놓기’는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낯설고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전통자수를 고집하며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전통자수 연구가 박인자(59·여)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박 선생을 만나 한국전통자수의 매력과 그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어느덧 한국전통자수에 몰두한 지 30여년이 지났다. 우연치 않게 동양자수에 관한 월간지를 보게 된 박인자 선생은 자수의 생소함과 그 아름다움에 서서히 빠져들었고, 자수의 재료를 구입해 혼자 기법을 익히며 새벽이 돼서야 잠에 들 정도로 관심을 쏟았다. 편찮은 모친을 간호하며 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스스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도 그가 자수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한몫했다.

그렇게 혼자 공부하고 연구하며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던 박 선생은, 어느 날 친척의 소개로 이학 선생을 만나게 됐다. 당시 진의종 국무총리의 부인이자 한국자수문화협의회장이던 이학 선생은 박 선생에게 한국전통자수를 가르치며 협회 일을 맡아서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로 그를 예뻐했다. 본격적으로 자수에 대해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이후 박인자 선생은 당시 자수분야의 대가였던 송 선생을 만나 10여년 동안 함께 일을 했는데, 그때 송 선생에게 받은 가르침은 아직까지도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처음부터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잘해주었던 박 선생이 송 선생에게는 마냥 고맙고 예뻐보였는지, ‘솜씨가 좋다’ ‘고맙다’라는 말로 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박 선생은 “송 선생님은 절 많이 예뻐해주시고 믿어주셨어요”라며 “제가 수를 꼼꼼하게, 정성스럽게 놓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 분께선 제 솜씨를 매우 아껴주셨죠”라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 기대에 힘입어 박 선생은 수를 놓는 데 있어서 온 정성을 기울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3배가 많은 수고비를 준다며 유혹해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그런 그의 성격은 송 선생의 신뢰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박 선생은 한국전통자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전통자수에 있어서 자리를 잡아가던 박 선생에게도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던 적이 있다. 월드컵으로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응원의 열기가 무르익던 2002년. 3년 간의 투병 끝에 남편이 그의 곁을 떠났다. 어딜 가나 남편과 함께 걸었던 흔적이 남아 그를 괴롭혔고, 밀려드는 슬픔에 몸서리치며 그는 모든 것이 다 귀찮아졌다고 한다.

이후 일본 YWCA의 초청으로 그동안 만들어 온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전시·판매한 후, 모든 것을 접고 충북 단양으로 내려간 박 선생은 해서는 안 될 마음까지 먹었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다 포기할 생각으로 내려갔던 단양이지만, 이 8년간의 단양 생활은 그에게 다시 새로운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너무 힘들어 살고 싶지가 않아 죽을 생각까지 했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위로도 해주고, 스스로 하나님에게 여쭤보면서 혼자 생각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결국 내 마음 속에 남는 것이 수를 놓는 것과 장애인을 위한 사업이었어요.”

수원을 그리워하면서 정조의 화성능행도병 혜경궁홍씨 진찬연을 수 놓던 그를, 관광차 단양에 온 수원시청 직원들이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8년간의 단양 생활을 접고 올라온 그는 시청 직원의 소개로 화성행궁 광장 바닥에 타일로 깔아놓은 반차도를 감수했던, 당시 이화여대 학술원장이던 한영우 교수를 만나게 된다. 박 선생은 “한 원장님은 제 작품을 보시고 감탄하시며 역사적으로 남겨야 된다고 하셨어요”라며 “그러면서 조선시대 의궤에 관한 참고자료를 다 내어 보여 주셨죠”라고 말했다.


 


박 선생은 현재 매일 15명의 문하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문하생들과 제작한 50여 점의 작품을 가지고,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수원 화성행궁사업소 화성갤러리에서 ‘의미(衣美)’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열었다.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에게 한국전통자수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자수를 고집하는지 물었다.

그는 “우리나라 전통자수는 투박하면서도 입체감이 있고, 중후한 느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작품성이 있어요”라며 자수에 대해 설명했다.

한번 시작하면 재미있기에 주변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러 올 정도로 집중한다는 박 선생은 ‘한국전통자수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한단다. 가끔 하기 싫을 때 스스로에게 ‘나는 이걸 안 하면 뭐를 할 수 있을까, 뭐를 할 건가, 뭐를 할 때 내가 기쁠까?’라고 되물으며 생각해도 마지막에는 결국 한국전통자수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그는 “자수는 내가 나를 이길 때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라며 “내가 놓은 수를 보면 상당히 뿌듯하고 혼자만이 느끼는 쾌감도 있죠”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현재 한국전통자수에 관해 논문화시킬 수 있는 책을 쓰고 있다는 그는 “제가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그 중 자수에 관심을 가지는 저 같은 사람이 한두명이라도 나와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라며 사람들이 한국전통자수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희망한다고 이야기한다.

“전 앞으로 수원 화성행궁에 대한 의궤를, 반차도를 자수로 복원하고 싶어요. 하지만 한 가지 그림이라 할지라도 큰 것과 작은 것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제 평생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장애인들에게 자수를 가르치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한편, 박 선생은 오는 9월 23일부터 수원문화재단 기획전시실에서 정조대왕 반차도를 주제로 전시회도 할 예정이다.

글 │ 백미혜 기자 qoralgp96@kgnews.co.kr

사진 │ 노경신 기자 mono316@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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