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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갑갑을을(甲甲乙乙)

 

쉽지 않았다. 일선 기자 때 일이다. 성실하고 발전 가능성이 많은 중소기업들을 지면에 소개해 자랑하고 싶었다. 중소기업에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고생 끝에 성공 궤도에 오른, 스스로의 삶을 본받아 누군가도 그 뒤를 따라 걷는다면 자신이 곧 모범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생각처럼 섭외가 쉽지 않았다. 기획 의도를 아무리 설명해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곳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거나 머뭇거리는 모양이 전화선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중소기업에도 좋은 기회인데, 왜 그럴까.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런 실패가 계속되자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했다. 스스로를 홍보하는데 인색하니까, 중기업이나 소기업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다소 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땐 그랬다. 생각의 깜냥이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기껏 생각해낸 게 유관기관에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지방 신문 경제부 기자보다는 스킨십도 많고 또 오래됐기 때문에 접근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당시에는 스스로가 기특했다. 역시 두드리면 열렸다. 뚫기 어려웠던 중소기업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 취재에 협조하는 기업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좋았다. 그래서 취재 후 기사가 나오면 정성을 다해 신문을 보냈다. ‘이렇게 기사가 나왔습니다’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중소기업 시리즈는 20회 정도 지상보도 됐다. 나름 뿌듯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소기업과 관련된 단체에 있는, 이미 친해져서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는 사이가 된 친구와 술청에서 만났다. 술자리는 깊어졌고 세상사는 이야기로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그 친구가 던진 이야기가 가슴에 걸렸다.

“형, 그때 중소기업들이 인터뷰를 왜 꺼렸는지 아세요?”

“아니, 왜?”

“그때는 이런 말씀 드리기가 뭐해서 못 드렸는데, 이제는 시간도 지났고 별다른 잡음도 없고 해서 말씀 드리는 거예요.”

‘잡음? 잡음이라니.’ 생뚱맞은 소리에 속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다지만, 예전에는 자신들 기사가 나가면 좋은 일보다 귀찮은 일들이 더 많았거든요.”

“귀찮은 일이라니 뭔 말이야?”

“형처럼 기사만 써서 보도하면 좋은데, 기사보다 광고 때문에 중소기업을 찾는 언론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업들도 처음에는 순진한 마음에 인터뷰에 응했다가 기사가 나간 후 광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심지어 그 기사를 보고 다른 언론에서도 우리는 왜 안 하느냐는 등의 항의 아닌 항의를 받기도 했고요. 그런 일들이 많아지니까 자연스레 언론기피현상이 생기게 된 거죠. 득보다 실이 많으니까.”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섭외할 때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망설임과 주저함이 고스란히 이해됐다.

‘순진한 기자는 기사 욕심에 인터뷰를 고집했고 시달림에 지친 기업인은 지갑 걱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우스운 풍광(風光). 21세기 대한민국 지방 언론의 현주소가 그 한 장면에 고스란히 녹아났다.

문제는 불신(不信)에 있었고 이 사회에 뿌리 깊게 배어있는 유령, ‘갑을관계(甲乙關係)’에 있었다. 이 심각한 불치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갑’과 ‘을’은 누가 먼저라고 하기 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구성원 각각의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불신의 골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신뢰 회복만이 답일 것이다. 왜? 언론이 갑도 아니고, 중소기업이 을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사실이 현실과 만나면 왜 아니올시다가 되는지, 언론부터 반성할 일이다. 언론과 기업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만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언론과 기업은 스스로가 갑갑이 되고 을을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상생도 좋고 창조경제도 좋지만 사회 구성원 사이에 이끼처럼 자리 잡은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바탕위에 각각의 순기능을 살린다면 기업은 기업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스스로가 갑이 되지 않을까. 너무 순진하거나 바보 같은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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