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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피곤합니다

 

결국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찾지 못했다. 이를 보는 국민들의 피로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사정은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북방한계선(NLL) 등의 문제에 묻혀 한달 가까이, 거기에 사라진 사초(史草) 찾기에 일주일을 정쟁으로 지새웠으나 밝혀진 것 없이 오히려 의혹만 증폭됐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은 지난달 24일이다. 그 후 한달 가까이 정국이 온통 북방한계선(NLL) 등의 문제에 묻혀 허우적댔다. 공개한 회의록이 원본인가 아닌가의 진위 여부와 제기된 조작 관련 등 훼손·왜곡 의혹에 대해 여·야가 끝 모를 공방을 펼쳤다. 그러다 일주일전 회의록 실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알려졌다. 정치권은 또다시 격돌했다. 여야는 전문가를 대동,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1주일 동안 자료 검색도 했다. 검색한 제목과 본문만도 30여만건이나 된다. 그러나 원본은 없었다. 여·야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맞을 것이라는 예상을 여지없이 뒤엎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국민들의 피로감 극대화

국민들은 지난해 말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여야가 대선에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격돌하는 것을 본 게 그것이다. 당시 국민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놓고 진보와 보수로 갈려 분열하는 것에 대해 국가 안보에 관한 중대 사안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강한 비판도 제기했다. 하지만 정치권 스스로 진위 여부를 가리지 못한 채 고소 고발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하면서 문제 해결 없이 슬그머니 발을 뺏다. 검찰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 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허위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여당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상처는 날대로 난 상태였다.

사실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는 이때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국정원에서 보관 중이던 ‘정상회담 회의록’이 ‘정본(正本)이다 아니다’,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 ‘정상회담 회의록과 동일하다. 그렇지 않다’ 등등을 놓고 여야의 본격적이고도 끝없는 공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찾지 못한 회의록으로 인해 여·야 모두 국민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정치권의 피로감도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원본 확인으로 국정원 공개 회의록의 조작여부를 증명하려다 실종의 책임을 떠안게 됐고, 여당은 안보이슈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해서다. 정치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결정을 내린 원죄가 화를 불렀고, 정국은 정치권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꼴이 됐다.

사정이 이러하자 정치권이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치권의 행보는 빠르다. 정쟁의 장을 펼친 건 당사자들이면서도 “출구전략을 찾아야 하느니” “정치권이 언제까지 회의록 문제로 날을 세울 것이냐” 등 마치 남의 일 이야기 하듯 슬그머니 발 빼기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서다. 일부에선 대화록 실종 경위 규명은 검찰에 맡기고 정치권은 민생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고도 했다. 그럼 그동안은 민생의 어려움은 전혀 몰랐다가 이번에 알았다는 것인지, 이제 회의록 공방은 그만하고 민생으로 돌아오라는 소리를 못들은 것인지 국민들은 다시 한번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론 이러면서도 여·야가 아직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정상회담 회의록 정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전략’을 놓고서 여·야 간 입장이 엇갈리고 있으니 말이다. 검찰수사에 대한 합의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대화록 부재(不在)가 확인된 이상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새누리당 입장과 정치력을 발휘해 이쯤에서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민주당의 속내가 또 다른 충돌을 불러올 조짐도 보이고 있어 걱정이다.

본연의 책무에 전념해야

대선 때부터 10개월 가까이 나라의 정체성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며 진실게임의 장으로 변하게 한 정치권의 욕심은 이제 거두어져야 한다. 또 없어진 회의록의 진실에 대한 증명은 아쉽지만 검찰에 맡기고 정치권은 본연의 책무에 전념해야 한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찾는 일에 국력을 소모하기에는 우리 앞에 산적한 민생 현안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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