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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두 마리 경제 토끼를 잡은 우의정 김육

 

국민의 행복을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그래서 복지 예산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세수 확보가 뒷받침되지 못하니 다른 분야 예산을 감축해야 하는 문제가 뒤따르고 있다. 복지를 확대하면서도 재정 구조를 튼튼히 할 수 있는 두 마리 경제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17세기 조선 사회도 같은 문제에 부딪쳤다. 당시 조정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현물을 백성들로부터 거두어 들였다. 그런데 현물을 각 고을에서 한양까지 수송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옮기는 과정에 변질되거나 파손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조정에서는 한양에 있는 상인들에게 필요 물자를 대신 관청에 납부하게 하고 물건 값을 해당 고을에서 징수하게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상인들이 물건 값을 고을로부터 과다하게 징수하였기에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 이 문제는 16, 17세기 조선 사회 백성에게 큰 부담이었고, 조정의 입장에서도 골칫덩어리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대동법이다. 이전에 가호(家戶)를 단위로 사람에게 부과되는 인두세적 성격의 현물 징수 방법을 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토지세를 걷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 대동법이다. 관청에서는 토지에서 세를 거둔 후 이를 공인(貢人)이라고 하는 공납물 납품업자에게 맡겨 필요한 물자를 납품 받았다. 토지가 없는 자는 세를 납부하지 않으니 그만큼 부담이 줄어들어 환영하였고, 조정에서는 세를 정확하게 거두어들이니 재정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이다. 대동법은 1608년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고,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었으나 각 지방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못한 시행 세칙의 미비, 상인들과 지주,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관료들의 반발로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반발 속에서 대동법의 확대 실시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정착시킨 이가 김육이다. 김육은 다른 사람보다 늦게 관직에 진출하였다. 김육은 1605년 26세 나이 때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으나 퇴계 이황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정인홍에 대항하다가 성균관에서 쫓겨나 경기도 가평군 잠곡으로 피신하였다. 이곳에서 김육은 농사를 지으며 김육은 은둔 생활을 하였다. 김육은 잠곡에서 민생의 어려움을 몸으로 겪으면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킬 개혁 사상을 다듬었다. 김육은 잠곡에 대해 애착을 가졌다. 그래서 호도 이 곳 지명을 따서 잠곡이라 하였다.

김육이 세상에 다시 나가 뜻을 펼칠 기회가 왔다. 인조반정 직후인 1623년 금부도사가 되었고, 다음 해인 1624년 45세 나이로 문과에 장원 급제하며 본격적인 관리 생활을 시작한다. 다른 이들에 비해 매우 늦게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김육은 남들이 은퇴하는 70대에 효종이 집권하자 우의정을 맡아 뜻을 펼칠 기회를 갖는다.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대동법을 충청도 지방에 시행하고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기반을 확보하였다. 김육은 가평 잠곡에서 그 기초를 잡고 관직 생활 동안 키워온 경세론을 바탕으로 굳은 신념과 강철 같은 의지로 대동법을 관철해 나갔다.

대동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현실적 이해관계 외에 과중한 토지세가 부과되면 지주의 안정적인 생활 기반이 침해받게 되고, 이는 지주를 기반으로 하는 향촌 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들은 조세 개혁을 통해 국가 재정을 늘리기보다 재정의 절약, 축소를 통해 지주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육은 반대론자들의 명분론과 기득권 수호 논리를 물리치고 대동법을 정착시켰다. 대동법의 시행은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가 재정도 튼튼하게 만들었다.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관청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니 화폐상품경제가 발달하여 경제도 활성화 되었다. 김육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명분론을 모두 극복하고, 대동법 시행이라는 시스템 개혁을 통해 민생도 안정시키고 국가 재정도 튼튼히 하는 두 마리 경제 토끼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도 활성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 우리 사회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상이 어려우면 어질고 유능한 신하가 생각난다는 옛말이 있다. 요즈음 들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명분론을 모두 극복한 김육이 자주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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