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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역사교육 이렇게 하자

 

몇 년 전, 관계하는 단체의 10주년 기념 자료집을 만들 때다. 제목 아이디어를 내라기에 이렇게 제안했다. <10년 후를 기억하며, 10년 전을 상상하라>. 항의가 쏟아졌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거 아닌가요? 잘못 쓰신 거죠?

그 자리에서 긴 설명을 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저 발상은 독창적인 게 아니다. 20세기 영국 역사가 루이스 네이미어 경의 명제를 빌려온 것일 따름이다.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하라! 물론 네이미어는 멋 부리려고 상식을 뒤집은 게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에드워드 카의 친숙한 명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이미 지나간 과거가 어떻게 현재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려면 우선 현재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과거가 ‘상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왜 현재가 과거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가? 미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역사의 대열 한복판에 있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는 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의 행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오늘에 이르게 된 과거를 되짚어보는 일 단 한 가지뿐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표지점(미래)을 향해 잘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목표에 비추어 과거를 끊임없이 재탐색해 보아야 한다. 더구나 우리가 창조적 미래를 꿈꾼다면 과거 역시 기억력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동하여 샅샅이 훑어봐야 할 대상이다. 하여, 미래는 기억해야 될 목표가 되고, 과거는 상상의 영역이 된다.

과거는 상상, 미래는 기억

역사 교육 강화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우리 학생들이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가 낳은 결과다. 물론 대통령에게 우려를 안겨 준 남침/북침 혼동은 역사 문제가 아니라 국어 문제라는 게 밝혀졌지만, 젊은 세대가 우리 역사에 걱정스러울 정도로 무지한 건 사실이다.

역사 교육 논쟁의 구도는 우선 필수과목 지정을 축으로 진행 중이다. 고교 필수과목으로 다시 지정하고, 수능 필수과목으로 재지정하라는 진영과 그렇게 되면 현행 교육과정의 틀이 전면 개편돼야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진영으로 나뉜다. 대의명분이 전자에 무게를 실어주지만 후자의 현실론도 가볍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필수파’다. 한때 역사를 공부한 젊은 시절의 인연이 있거니와 요즘도 여전히 역사야말로 인간 정신의 소중한 보고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중고교 다니던 70년대식으로 가르치는 역사 교육으로의 회귀는 결사반대다. 역사적 배경과 맥락도 모르면서 암기해야 했던 그 많은 연도와 인명과 사건이라니…. 끔직하다.

듣자 하니 바뀐 교육과정에 따라 ‘내러티브 수학’이라는 게 도입됐다 한다. 딱딱한 수학을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시도라나. 바로 그거다. 내러티브를 도입해야 하는 걸로 치자면 수학보다 역사가 훨씬 먼저여야 한다. 히스토리라는 말 자체가 이야기 아니던가.

학창시절들을 돌이켜 보시라. 역사를 이야기로 들려주시던 선생님의 가르침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나. 옛날이야기 형식은 아닐지라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삶의 모습이 이야기에 녹아있던 역사수업이 훨씬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히스토리=이야기

따라서 역사를 수능 필수로 하느냐 마느냐는 나중 문제라고 본다. 우선 역사 수업시수를 늘려야 한다. 역사 선생님들이 ‘역사 이야기’를 충분히 들려줄 수 있게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고교 역사보다 초·중학교 역사 교육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역사 속 시대와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시간을 줄수록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고교에서는 한 차원 고급스러운 내러티브를 통해 과거를 상상할 수 있게 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자칭 보수-진보의 ‘입맛대로 역사 왜곡’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안심해도 좋다. 진지하게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하는’ 역사 선생님들에게 맡겨 두면 엉뚱한 대화로 학생들을 끌고 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진정어린 대화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정치인들이나 제발 좀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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